스틱 대신 지휘봉 든 남자

입력 : 2015.07.22 01:03

[대관령음악제 지휘하는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 페뤼송]

라디오프랑스 지휘 代打로 호평, 내년 LA필·쾰른 오페라 지휘도
"내 지휘 스승은 김덕기 교수… 이제 나 자신을 시험해볼 시간"

국내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는 아드리앙 페뤼송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이 21일 대관령 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국내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는 아드리앙 페뤼송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이 21일 대관령 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수석 팀파니스트 아드리앙 페뤼송(32)은 지난해 12월 교향악단에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오늘 리허설에 지휘자가 아파서 못 나오는데, 대신 지휘해줄 수 있을까." 틈틈이 지휘를 배우던 페뤼송은 "리허설인데 뭐 어때"하고 승낙했고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또 전화가 왔다. "오늘 오기로 한 미코 프랑크(라디오 프랑스 차기 음악감독)도 아파서 못 온다는데…." 두 번째 리허설도 이끈 페뤼송은 결국 12월 12일 정식 연주회까지 지휘했다. 팀파니 주자에서 지휘자로 공식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페뤼송은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지휘했다. 페뤼송은 "드보르자크는 연주를 많이 해봤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한 적도 있기 때문에 자신 있었지만 피아노 협주곡 지휘는 처음이었다. 연주 전날 밤까지, 악보 읽느라 정신없었다"고 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페뤼송의 깜짝 등장을 1943년 브루너 발터 대신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번스타인에 견줘서 '뛰어난 지도자의 등장'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날 이후 페뤼송의 운명은 달라졌다. 영국 필하모니아 상임지휘자인 핀란드 출신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과 함께 교향곡과 오페라 프로젝트를 맡아 지휘하게 됐다. 내년 2월엔 LA필하모닉 데뷔도 앞두고 있고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모차르트 '돈조반니'로 오페라 지휘자로도 데뷔한다.

2007년부터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으로 일해온 페뤼송은 국내 음악 애호가들에겐 이미 유명한 스타다. 음악의 흐름을 정확히 짚는 민첩함과 우아한 터치로 청중의 환호를 한몸에 받아왔다. 페뤼송이 한국에서도 지휘자로 데뷔 무대를 갖는다.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리는 제12회 대관령 음악제에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연주자들로 이뤄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국립합창단과 테너 정호윤, 소프라노 황수미 등과 함께 비제 '카르멘', 구노 '파우스트' 포레의 '레퀴엠' 등 프랑스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20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에서 첫 오케스트라 연습을 가진 페뤼송은 "서울시향 단원들이나 동료, 친구들이 많아 가족처럼 익숙하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뒤쪽에 앉은 팀파니 주자는 자기 파트보다 다른 단원들의 연주를 들으며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연주자이자 청중으로 오케스트라를 파악하기 좋은 위치인 셈이다. "팀파니스트는 지휘자와 악장은 물론 다른 단원들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청중이 보기엔, 연주도 별로 안 하고 노는 것 같지만요." 지휘자 정명훈은 "팀파니는 악장(Concert Master)만큼 중요한 자리"라고 말한다.

페뤼송은 작년 12월 이후 라디오 프랑스에서 팀파니 연주를 관뒀다고 했다. '지휘자 페뤼송'에게 몰려오는 스케줄이 많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음 시즌 1년만 우선 라디오 프랑스 적(籍)을 유지하기로 했다. 지휘자로 전업할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열몇 살 때 바순과 팀파니 둘을 놓고, 고민하다가 팀파니를 선택했을 때 같은 순간이 왔네요. 나 자신을 시험해봐야지요."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으로는 당분간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다. "서울시향을 언제 지휘하느냐고요? 글쎄, 모르겠네요. 누가 또 병이 나서 지휘대에 못 서면 불러줄까요?"

페뤼송이 살로넨에게 지휘를 배웠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페뤼송은 "몇 년 전부터 서울에 연주하러 올 때마다 김덕기 서울대 교수에게 정기적으로 지휘를 배웠다"고 했다. "정명훈 감독요? 언제든지 질문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시지요. 좋은 질문이어야겠지만. 최상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정 감독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레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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