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15 03:00
[동양인 첫 파리오페라발레단 '쉬제' 출신 김용걸 교수]
바닥에서 주역 등급까지 올라
17일엔 새 창작 발레 들고 이탈리아 코모 페스티벌 진출
"자꾸 자극받아야 발레 발전해"

"음~ 정말 맛있네요." 초콜릿 듬뿍 얹은 파이를 먹으며 흡족해하는 이 남자, 뜻밖이다. 불혹을 넘고도 늘씬한 몸으로 발레를 하는 그가 다디단 케이크를 주문하다니. "프랑스에서 10년 살면서 디저트 문화에 빠졌어요. 맛있는 후식을 먹기 위해 전식과 본식은 적당히 먹고 후식 들어갈 배는 비워두는 거죠. 우리 한식은 원래 코스가 없잖아요. 살다 보니 그런 게 좋은 거예요, 한꺼번에 후다닥 해치우지 않고 조금씩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가는."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발레리노 겸 안무가 김용걸(42·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은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을 차례대로 음미한다. 그 버릇이 발레를 익히는 데에도 배어 있다"고 했다. "콩쿠르 1등 하려고 화려한 테크닉에만 치중하는 우리와 달리 스텝부터 제대로 배워서 가만히 있어도 우아하고 감정이 묻어나요. 감동을 주죠."
한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이 고국을 방문해 국내 무대를 채우고 있다. 지난 주말 대학로에선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 스타 초청 공연'이 열렸고, 오는 21일 오후 8시 서울 성암아트홀에선 한예종 무용원 20주년을 축하하는 월드스타 갈라 '오디세이아 20' 공연이 열린다.
미국·영국·독일·핀란드·네덜란드 등 한반도 바깥에서 날아든 남녀 무용수들 사이엔 15년 전 동양인 남자 무용수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활약했던 김용걸이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설립, 340여년이라는 세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그 발레단은 외국인 단원이 5%에 지나지 않을 만큼 배타적인 곳. 그렇기에 그가 견습생부터 쉬제(위에서부터 셋째 등급)까지 올라간 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보다 뛰어난 성취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쉬제가 될 때까지 바닥에서 버틴 5년을 "내가 나를 따돌린 시간이었다"고 압축했다. 한국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주역을 도맡다가 스물일곱,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큰 무대로 갔는데 알고보니 기본기가 없었다. "1분짜리 솔로와 5분짜리 듀엣만 잘하면 되는 '콩쿠르 출전용' 무용수였던 거죠. 저는 100m 달리기를 하듯 냅다 뛰어서 점프만 높게 했는데 동료들은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발레답게' 몸을 움직였어요. 부끄러워서 다리를 들 수도, 회전을 돌 수도 없었죠. 서른 명이 함께 서 있는 군무에 파묻혔어요. 스페어타이어였어요, 누가 펑크를 내면 힘껏 손들어서 눈에 띄어야 하는."
미국·영국·독일·핀란드·네덜란드 등 한반도 바깥에서 날아든 남녀 무용수들 사이엔 15년 전 동양인 남자 무용수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활약했던 김용걸이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설립, 340여년이라는 세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그 발레단은 외국인 단원이 5%에 지나지 않을 만큼 배타적인 곳. 그렇기에 그가 견습생부터 쉬제(위에서부터 셋째 등급)까지 올라간 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수진보다 뛰어난 성취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쉬제가 될 때까지 바닥에서 버틴 5년을 "내가 나를 따돌린 시간이었다"고 압축했다. 한국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주역을 도맡다가 스물일곱,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큰 무대로 갔는데 알고보니 기본기가 없었다. "1분짜리 솔로와 5분짜리 듀엣만 잘하면 되는 '콩쿠르 출전용' 무용수였던 거죠. 저는 100m 달리기를 하듯 냅다 뛰어서 점프만 높게 했는데 동료들은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발레답게' 몸을 움직였어요. 부끄러워서 다리를 들 수도, 회전을 돌 수도 없었죠. 서른 명이 함께 서 있는 군무에 파묻혔어요. 스페어타이어였어요, 누가 펑크를 내면 힘껏 손들어서 눈에 띄어야 하는."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그 지루하고 앞이 안 보이는 연습을 묵묵히 견뎌낸 바탕엔 "최고의 무기라고 믿는 성실성"이 큰 몫을 했다.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땐 언젠가 발레를 하며 느낀 행복과 갈등을 춤으로 표현해보리라 이를 악물었다. 그 꿈도 이뤘다. 지난해 발표한 창작발레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로 올 초 그는 무용예술상 안무상을 받았다. 오는 17일 이탈리아 코모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서 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나의 본질을 꿰뚫는 동료들의 맑은 눈초리가 무서워 먼저 움츠러들고 부끄러워했던 파리에서의 내 삶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발레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세평에 대해 "아직 멀었다. 유년기가 부실한 청년기에 겨우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서양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까지 동양인이 하는 발레에 감탄하지 않아요. 국립발레단 최근 공연 '백조의 호수' 보셨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프리드만 포겔이 방한해 지크프리트 왕자를 췄는데, 우리는 별것 아닌 동작이라 여기는 아라베스크(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한쪽 다리는 뒤로 뻗고, 양팔은 넓게 벌려서 만드는 아름다운 자태)를 그는 세 바퀴만 돌아도 정확한 라인을 지키면서 했어요.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연습실에 가봤어요. 다들 자존심이 있으니 옆눈으로 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자꾸 자극받아야 해요. 그래야 발전해요."
그는 한국 발레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세평에 대해 "아직 멀었다. 유년기가 부실한 청년기에 겨우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서양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까지 동양인이 하는 발레에 감탄하지 않아요. 국립발레단 최근 공연 '백조의 호수' 보셨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프리드만 포겔이 방한해 지크프리트 왕자를 췄는데, 우리는 별것 아닌 동작이라 여기는 아라베스크(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한쪽 다리는 뒤로 뻗고, 양팔은 넓게 벌려서 만드는 아름다운 자태)를 그는 세 바퀴만 돌아도 정확한 라인을 지키면서 했어요.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연습실에 가봤어요. 다들 자존심이 있으니 옆눈으로 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자꾸 자극받아야 해요. 그래야 발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