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남매 키워낸 60여년 된 구두통, 쓰레기통 속 찾은 아들 대학수험표…

입력 : 2015.07.07 01:1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복 70년 '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展]

흑백사진·일기·주걱·금성TV 등 70명의 평범한 사람들 인터뷰와
소장품으로 본 대한민국 70年史

전쟁통이던 1951년 당시 13세 소녀 박영자는 덕수궁 앞에서 만국기를 팔았다. 오빠가 종로 쪽으로 만국기를 들고 나가면, 소녀는 반대편 덕수궁 쪽으로 총총 걸었다. 기둥에 전선을 층층이 감아 매고 만국기를 달면, 지나가던 유엔군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갔다.

어느 날 미국 종군기자 존 리치가 만국기를 파는 소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며칠 뒤 다시 덕수궁 앞에 들른 리치는 소녀에게 그 사진을 선물했다. 소녀는 일흔일곱 할머니가 될 때까지 64년간 사진을 간직했다. 수필가인 박씨는 "당시 집에서 어머니가 박음질한 만국기를 안방에 펼쳐놓으면, '세상이 안방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1951년 덕수궁 앞에서 만국기 장사를 하는 박영자(오른쪽)씨의 모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1951년 덕수궁 앞에서 만국기 장사를 하는 박영자(오른쪽)씨의 모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고단하고 신산(辛酸)했지만 한편으론 정겨운 대한민국 70년을 보통 사람 70명의 인터뷰와 소장품을 통해 돌아보는 전시회가 열린다. 7일부터 9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광복 70년 특별전 '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다. 6남매를 키워낸 어머니의 밥주걱, 4·19 혁명 당일에 썼던 고교생의 일기,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촬영했던 토목 공학자의 사진기 등이 이 전시회의 '주인공'이다. 미군이 버리고 간 책더미에서 일본 도쿄의 '지하철도사(地下鐵道史)'를 찾아서 공부했던 김명년(81)씨는 1970년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장으로 임명되어 지하철 건설에 참여했다. 70명의 삶을 촘촘하게 이어놓은 전시회는 개인 소장품으로 재구성한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같다.

34년간 철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1998년 퇴직한 황인덕(76)씨는 구두닦이 통을 내놓았다. 5남매 중 맏이로 홀어머니 아래 자랐던 그는 전쟁통에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좌판 행상을 가리지 않고 했다. 미군들이 구두 닦은 값으로 1달러와 함께 초콜릿과 사탕을 팁으로 주면 황씨는 그걸 팔아서 동생들을 보살폈다. 황씨는 "친구들이 학교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구두통이 부끄러워 보자기에 숨겨서 들고 다녔다"면서 "당시엔 구두통이 부끄러웠지만, 이 낡은 구두통은 내 삶을 지탱케 해준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황인덕씨가 사용했던 구두닦이 통(사진 왼쪽)과 김금자씨가 아이들을 위해 장만했던 금성TV.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황인덕씨가 사용했던 구두닦이 통(사진 왼쪽)과 김금자씨가 아이들을 위해 장만했던 금성TV.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경북 안동에서 6남매를 키워온 어머니 조봉래(81)씨는 50년간 사용했던 스테인리스 주걱과 함께 막내아들(40)의 1994년 대학 수험표를 기증했다. 이 수험표에는 사연이 있다. 아들과 함께 열차를 타고 상경하던 길에 수험표가 든 가방을 그만 기차에 두고 내렸다. 대학교에 도착해 아침을 먹다가 가방을 잃어버린 걸 알아차린 조씨는 청량리역으로 되돌아가 아들의 수험표를 찾아달라고 울고 불며 통사정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역무원들이 역사(驛舍) 쓰레기통에서 가방을 찾았다. 아들은 합격했고 대학원까지 잘 다녔다.

재봉틀로 아동복을 만들어 팔았던 김금자(76)씨의 기증품은 1970년산(産) 금성TV다. 드라마 '아씨'가 인기를 끌었던 그 무렵, 세 살 난 딸이 이웃집에 드라마를 보러 갔다가 구박을 받고 울면서 되돌아왔다. 어머니 김씨는 12개월 할부로 텔레비전부터 들여놓았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재도구를 팔 때도 어머니는 아이들 생각에 텔레비전만큼은 차마 내놓지 못했다.

이번 전시회는 크게 ▲광복과 6·25 전쟁 ▲경제개발과 민주화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탈북해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북한 연구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혁(33)씨의 가족 사진과 수첩이 마지막 70번째 전시물이다. 김성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거대한 역사의 속살을 채우는 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겹고 흥미진진한 사연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취지"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오는 8월 광복 70년 기념 사진전, 12월에는 흥남철수 특별전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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