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체스판… 게임 실력은 '알까기'?

입력 : 2015.06.30 00:20

[뮤지컬 리뷰] 체스

"미안해요,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1막 끝, 주인공인 러시아 체스 챔피언 아나톨리는 돌연 미국으로 망명하겠다고 밝히면서 여주인공 플로렌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순간, 뻣뻣한 연기로 유명해진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대사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가 떠올랐다. 그만큼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배우의 연기 탓만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이 시대적 배경인 뮤지컬 '체스'〈사진〉는 이야기 자체가 빈약했다. 왜 주인공이 다른 체제를 선택하는 것인지,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상처를 안은 여주인공은 작품에서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체스 게임만큼이나 현란하고 긴박한 세계 냉전(冷戰) 최말기의 첩보전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만한 전개였다. 결말은 이 뮤지컬의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보다 1년 전에 나온 테일러 핵퍼드 감독의 영화 '백야'(1985)를 뒤집은 듯했으나 맥이 빠졌다.

/엠뮤지컬아트 제공
/엠뮤지컬아트 제공

'체스'는 올 여름 큰 기대를 모은 라이선스 초연작이다. 뮤지컬사(史)에 이름이 빛나는 팀 라이스가 가사와 극본을 썼고, 아바의 남성 멤버 두 명이 음악을 맡았다. 과연 주인공이 조국을 그리워하는 1막 '앤섬(Anthem)' 같은 삽입곡들은 심장이 떨릴 만큼 매력적이었으나, 갈라 콘서트를 보는 듯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체스판과 말을 표현한 의상과 무대·소품, 배우들의 군무는 눈길을 끌었지만 작품 자체가 정작 체스 게임과는 거의 무관하게 전개되다보니 장식품 역할을 할 뿐이었다. 2막 후반부 마지막 게임에 등장한 군무는 체스라기보다는 알까기 게임에 가까워 보였다. 남녀 주연을 맡은 조권과 안시하 등의 가창력은 안정적이었으나 작품 전체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나 특이한 건, 이 작품에선 1980년대 미국과 대치했던 나라 이름이 줄곧 '러시아'로 나온다는 점이다. '소련'이란 국명은 이제 대부분의 뮤지컬 관객에겐 생소한 사어(死語)로 전락한 걸까?


▷7월 1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시간 155분, (02)764-7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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