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연출 고선웅 "코끼리가 물 찾아가듯 본능에 끌려"

입력 : 2015.06.25 14:49
뮤지컬은 무대 장르 중 가장 상업적이지만 책임감이 따를 때가 있다. 7월 개막을 앞둔 뮤지컬 '아리랑'이 그 예다.

약 5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아리랑'은 한국형 대형 창작뮤지컬을 꿈 꾼다. 조정래 작가의 동명 소설이 바탕인데 흥행은 미지수다. 뮤지컬 주요 관객층(20~30대 여성)에게 크게 가닿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22일 오후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희망을 봤다. 리딩 공연 형식의 넘버 20개를 들려줬는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에도 100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약식으로 들려주고 보여줬지만 넘버와 이야기 전개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서범석·안재욱을 비롯한 배우들은 '아리랑'의 무게에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때는 여느 때보다 즐겼다.

이날 쇼케이스 전 블루스퀘어에서 '아리랑'을 이끄는 고선웅 연출을 만났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 예술총감독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박명성 프로듀서는 그에 대해 "후배지만 존경한다"고 했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아리랑'의 정서를 '애이불비(哀而不悲)'로 요약했다.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 하는 것.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 등을 통해 보여준 고선웅 식 정서다. "본래 슬픔을 강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리랑' 연습을 진행하다 어느날 '애이불비'가 떠올랐죠. 속으로는 슬픈데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잖아요. 이런 점이 구현되면 아리랑다운 작품이 나올 거라 확신합니다."

-'아리랑'에 어떻게 빠져들었나

"(온몸으로 기쁨과 애환을 표현하는 '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 여사 춤을 어느 순간 보는데 그 눈빛과 손의 마디와 마디를 접어서 비트시는 것에 놀라운 경외를 느꼈죠. 어렸을 때는 얼굴도 부러 못 생기게 만드시고 손도 막 비트셔서 놀랐는데 커서야 대단한 경지라는 걸 느낀 거죠. 그런 걸 느끼고 (고선웅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아리랑'으로 흘러들어온 것 같아요. 작품을 준비한다고 해서 그 정서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에요. 겪으면서 물 흐르듯이 그렇게 대세가 형성되는 거죠. 지금은 '아리랑'을 연출하는 태도가 정화되듯 순수하게 됐죠."

고선웅은 그러면서 아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비유되는 "피다, 흙이다, 삶이다, 인연이다" 등에 모두 동의하게 됐다고 했다. "A는 B다라는 명제에 그간 동의하지 않았는데 아리랑을 거기에 대입하면 모두 동의한다"며 아리랑에 대한 애정을 거듭 표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못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6·25 동란과 일제 치하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인 저도 마찬가지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걸 알건 모르건 본능적으로 끌리는 부분이 있어요. 코끼리가 물을 찾아 떼를 지어 가는 것처럼 우리를 이끄는 것이 있다는 거죠."

-'아리랑'은 언제 접했나?

"예전에는 저랑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00년 쯤에 김좌진 장군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어요. 책임감이 느껴지고 배경을 공부하다 보니 제 안에 뜨거운 피가 있는 걸 느꼈죠. (2010년 두산아트센터가 진행한 '인인인 시리즈, 한국인-중국인-일본인' 참여했을 당시) 9명의 호스피스 간호사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한국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한 순간이었죠. 그렇게 한국의 근현대사를 자연스럽게 들어다보면서 나라와 나의 관계, 한국인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렇게 이어져 '아리랑' 연출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내용이 너무 방대했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색의 귀신'으로 통하는 만큼 이번 12권의 소설 속 아픔의 역사를 어떻게 압축할 지 기대가 된다.

"두시간 반으로 압축하려면 걷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 있어요. 체를 쳐 계속 굵은 것을 걸러내다 보면 남는 이야기가 있죠. 인물들의 관계를 몰고 정리하다 보면 원작과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조정래 선생님 작품에서 느낀 아리랑의 정서를 녹여내고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식 있는 양반 송수익 역의 안재욱과 서범석을 비롯해 김우형, 카이, 윤공주, 임혜영, 이창희, 김병희,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립창극단의 이소연 등 캐스팅이 정말 화려하다.

"정말 캐스팅이 좋아요. 정말 마음에 들죠(웃음). 특히 김성녀 예술감독이 이 시대의 어머니 상으로 중심 축을 잡아주시고 분위기도 좋게 만들어주셔서 영광이에요. 주·조연할 것 없이 모두가 주인공인 작품이라 그 점도 좋죠."

-연극 작업을 많이 했지만 입봉작인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비롯해 뮤지컬 작업을 꾸준히 놓치 않고 해왔다.

"뮤지컬의 매력은 노래와 춤이죠. 그런데 '아리랑'은 '아리랑'만의 형식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특히 누구 한 명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배우, 모든 스태프들이 '아리랑'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지 고민하고 있죠. 오랫동안 사랑받는 창작뮤지컬이 됐으면 해요. '한국인의 피 속에 이런 게 있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지만 내게도 이런 것이 있네'라는 느낌을 전해줬으면 하죠.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 단단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뮤지컬 '아리랑' 7월11일부터 9월5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6만~13만원. 신시컴퍼니·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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