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스타 마이클 리 "이제 한국이 집이죠"

입력 : 2015.06.23 09:43
브로드웨이 출신 재미동포 2세 뮤지컬스타 마이클 리(42)는 지난 2년 동안 한국 뮤지컬 신을 종횡무진했다.

2006년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 무대를 처음 밟고, 2010년 '미스 사이공'으로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 그는 지난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기점으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벽을 뚫는 남자' '서편제' '프리실라' '더 데빌' 등 2년 간 여섯 개 작품에 출연하며 마니아층을 구축했다. 섬세한 가창과 연기력, 다정다감한 성격은 관객뿐 아니라 동료 배우, 스태프 심지어 공연 담당 기자들마저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10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엘리전스(Allegiance)'로 현지 복귀한다. 토니상·올리비에상 수상자인 레아 살롱가를 비롯해 '스타트렉' 조지 타케이, '위키드' '렌트' 텔리 릉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조지 타케이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이 편견과 억압 속에서 자라는 과정을 그린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와 사랑, 인권을 다룬다.

3년 만에 미국 무대에 다시 서는 마이클 리는 미국 대학원생으로 출연한다. 뛰어난 머리와 리더십, 타고난 정의감으로 자유를 위한 반란을 이끄는 '프랭키'를 연기한다.

'엘리전스' 출연을 앞두고 2년 만에 다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고 있다. 성경 속 예수의 마지막 7일을 클래식과 록을 결합한 '록 오페라' 방식으로 그린 뮤지컬이다.

최근 신사동에서 만난 마이클 리는 연기와 노래 뿐 아니라 눈빛도 한층 깊어져 있었다.

기존 마이클 리의 예수가 좀 더 정의감에 차 있었다면 이번 마이클 리의 예수는 좀 더 포용력이 생겼다. 그간 익숙치 않은 한국어가 상당히 입에 익었으면서도 좀 더 정확한 의사 소통을 위해 영어 통역을 거치는 신중한 자세는 여전했다.

-'엘리전스'는 어떻게 참여했나?

"2011년 리딩할 때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워크숍도 참여하고 2012년 샌디에이고 올드 글로브 극장에서 트라이아웃 공연할 때도 같이 했죠. 창작진이 제가 미국에서 출연한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보고 참여 요청을 했어요."

-작품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상당수의 미국 사람들이 모르는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요. 사실 미국 정부가 내용을 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 미국 역사에서도 중요하죠."

-프랭키 역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역을 맡지 않았어요. 리딩 공연 때 주인공 형의 대사를 먼저 읽었죠. 그런데 수정을 하면서 그 캐릭터가 빠졌고 대신 프랭키가 생겼죠. 실존했던 캐릭터인데 창작진들이 제 모습을 투영해서 다듬어주셨어요."

-'엘리전스'는 처음부터 참여하는 작품이라 의미가 클 것 같다.

"큰 책임감도 생기고, 너무 흥분되기도 하죠.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하면서 만들어가는 작업이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하죠. 하지만 처음부터 참여하니 그 디테일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2년 전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출연했을 때와 지금 이 작품에 출연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

"지난 번 공연 때 유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번에 공부를 더 했어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하게 짚고자 했죠.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과정들에 대해 더 이해하고자 노력했죠."

-그래서 그런가. 2년 전 당신의 예수가 더 정의감에 불탔다면 이번 예수는 유다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을 좀 더 포용하는 듯하다.

"그렇게 보였다면, 감사한 일이죠."

-엄청난 가창력을 요구하는 작품이라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데 예수는 또 다른 인물들의 에너지를 수렴하는 역이기도 하다. 배우에게는 굉장히 힘들고 피곤한 캐릭터일 수 있다.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진짜 기절하기 직전이에요(웃음). 에너지가 고갈되죠. 하지만 유다를 비롯해 상대 배우들이 열심히 해주면 그 만큼 시너지가 생겨서 더 열심히 하게 돼요.

-번갈아가며 연기해야 할 세 유다(한지상·윤형렬·최재림)의 개성들이 워낙 강해 매번 다르게 상대해야 하는 것도 배우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을 항상 오픈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뿐만은 아니에요. 무대에 오를 때는 항상 경계하고 깨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잘 들어야 하죠. 그래서 귀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열고 있어야 해요. 그러면 무대 위에서 살아 있다는 흥분을 느끼게 되죠."

-아무리 어려운 예수 역이라도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편해지는 것이 있나?

"그렇지는 않아요. 같은 공연이라도 무대는 매번 다를 수 있으니 항상 무조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죠.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는 죽을 때까지 어려울 것 같아요."

-항상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제가 행운인 건 항상 좋은 배우, 스태프를 만났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빛나도록 도와주셨고요."

-작년에 한국 창작 뮤지컬 '서편제'에 출연하면서 한국 커뮤니티에 소속됐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브로드웨이로 떠날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법하다.

"그래요. 절대로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간 운 좋게 좋은 작품에 출연했고 지금 출연하고 있는 뮤지컬도 너무 좋은 작품이고, 가족과 함께 있으니 행복하기도 하죠. 다시 브로드웨이에 간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수 있는데 모든 배우들의 꿈이잖아요. 그곳에서 활동했지만 여전히 꿈이고 이상이죠. 무엇보다 '엘리전스'는 5년 동안 같이 한 작품이니 잘 마무리 짓고 싶어요. 분명한 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2년 동안 한국에서 배운 점이 무엇인가?

"브로드웨이에 한국 배우들, 스태프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요. 감히 말씀드리면 어느 곳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배우, 스태프들이 없어요. 한국 뮤지컬 산업이 계속 성장해서 성공할 거라 믿습니다."

-혹시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배우로서 가장 좋은 점은 항상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캐릭터를 맡든 공부를 하고 조사를 해야 하죠.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잘 알아야 하죠. 그러니 무슨 공연을 하고, 얼마나 돈을 버느냐보다는 얼마만큼 진실되게 무대 위에 서는지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진실되게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스탠퍼드 의대를 다니다 1995년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으로 뮤지컬에 데뷔하면서 뮤지컬배우로 진로를 바꿨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올해가 20주년이라는 것이 솔직히 믿기지 않네요(웃음). 배우로서 살면서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경험했어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요. 무엇보다 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고 아들을 얻었죠. 무엇보다 행운이 많은 삶이었어요."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온 마이클 리는 뮤지컬에서도 비슷했다. 예수 등의 캐릭터를 통해 경계에서 사람들을 관조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거나 위로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정착할 곳을 찾은 듯하다.

"'엘리전스'로 인해 잠시동안 한국 무대와 한국 팬들과 헤어지게 됐어요. 브로드웨이에서 '엘리전스'에 출연하는 것을 알고 현지 배우 친구가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거냐'고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니'라고 답했죠. '나는 지금 집을 떠나고 있는 거다. 이제 한국이 집이다'라고."

한국 뮤지컬계는 소중하고 사랑스런 뮤지컬배우를 가지고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브로드웨이에서 한층 성숙해져 올 마이클 리가 한국에서 정점을 찍고 있는 순간이다.

9월13일까지 잠실 샤롯데씨어터. 예수 마이클 리·박은태, 유다 한지상·윤형렬·최재림. 러닝타임 2시간15분(인터미션 포함). 5만~14만원. 롯데엔터테인먼트·알앤디웍스·RUG·설앤컴퍼니.1577-3363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