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극·창극의 부활… '시니어 뮤지컬' 市場 생길까

입력 : 2015.05.21 00:05

[중장년층 인기 얻는 대형 공연]

현대사 배경으로 공감 이끌어낸 '봄날은 간다' 10년 만에 재공연
'코카서스…'등 새 형식의 창극도

"중장년 타깃 뮤지컬 장르 없어… 악극·창극이 충족시켜 주는 셈"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지난 주말 뮤지컬 전용 극장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악극 '봄날은 간다'(김태수 작, 김덕남 연출)의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빠른 템포로 주제곡인 '봄날은 간다'를 부르자, 관객 대부분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제창했던 것.

50~70대가 주축을 이룬 관객은 극 곳곳에서 각별한 반응을 보였다. 월남전에서 전사한 주인공 아들의 유골함이 등장할 때는 곳곳에서 "아이고 저런" "어떡해" "쯧쯧" 같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기나긴 세월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익숙한 옛 가요를 곳곳에 삽입했으며 ▲중장년층 이상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 정서를 토대로 극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도는 컸다.

다시 간판을 내건 '악극'

'봄날은 간다'는 2003년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에서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던 작품이다. 지난해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뒤 올해는 'A급 뮤지컬 극장'이라는 디큐브아트센터에서 6월 21일까지 공연한다. 과거 '악극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윤문식·최주봉이 출연하고, 지난해 고(故) 김자옥에 이어 올해는 양금석이 여주인공을 맡았다.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최주봉·양금석 주연 악극‘봄날은 간다’(위 사진)는 중장년층 관객의‘뮤지컬 공연 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3월 공연된 창극‘코카서스의 백묵원’(아래 사진) 등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창극도 이 같은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있다. /쇼플레이·국립극장 제공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최주봉·양금석 주연 악극‘봄날은 간다’(위 사진)는 중장년층 관객의‘뮤지컬 공연 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3월 공연된 창극‘코카서스의 백묵원’(아래 사진) 등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창극도 이 같은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있다. /쇼플레이·국립극장 제공
오는 7월 9~21일 장충체육관 특설 무대에서 공연하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역시 1998년 초연 당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500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던 인기작으로, 17년 만에 부활했다. 이덕화·오정해·박준규 등 호화 캐스팅이 눈에 띈다. '악극'이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권인하·도원경 주연 뮤지컬 '꽃순이를 아시나요'(25일까지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역시 현대사의 긴 세월(1960년대~현재)을 배경으로 각 시대 히트곡과 함께 주인공들의 인생 역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악극'에 근접한 작품이다.

'시니어 뮤지컬' 시장의 탄생?

악극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국내 공연계를 대표하는 전통 공연 양식이었으나 TV와 영화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1990년대 '번지 없는 주막' '비 내리는 고모령' '가거라 삼팔선' 등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악극 르네상스 시대'를 이뤘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작품이 연달아 나오고 장르 자체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자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엔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악극이 다시 공연되는 현상에 대해 악극 장르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뮤지컬'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조짐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봄날은 간다'의 연출자인 김덕남 서울시뮤지컬단장은 "1990년대에 제작사가 '악극'이란 이름을 붙여 스스로 발목을 잡은 측면이 있는데, 사실 이 장르는 '전통 뮤지컬'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인터파크의 뮤지컬 예매자 중 40대 이상 비율은 2010년 13% 정도였으나 지난해엔 20%를 넘어섰다.

이런 현상은 '창극의 부활'과도 관련이 있다. 국립창극단은 2년 전부터 '메디아' '안드레이 서반의 춘향'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 형식이 새로운 창극을 선보이고 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뮤지컬처럼 한 달 가깝게 장기 공연을 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주말이면 객석 대부분을 채우는 관객은 역시 중장년층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뮤지컬' 부문에서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공연 시장에 분명히 수요가 존재하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뮤지컬 장르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는데, 광의의 뮤지컬로 볼 수 있는 '악극'과 '창극'이 일단 그 수요를 충족해 주는 셈"이라며 "하지만 형식과 내용의 발전 없이 비슷한 작품만 나온다면 10년 전처럼 사그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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