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수다·歌舞의 미학, 일본의 '침묵' 깨다

입력 : 2015.05.07 00:30

[시즈오카 세계연극제 참가한 이윤택 연출극 '코마치후덴']

현대극 연출가 오타 쇼고 원작… 한국적 리듬·정서로 재해석해
공연 후 10분동안 환호 이어져 "참신·독특… 한국말 아름다워"

박수와 환호가 10분 가까이 이어졌다. 지난 4일 한국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코마치후덴(小町風傳)'의 공연이 끝난 일본 시즈오카(靜岡)시 무대예술공원 다엔도(楕圓堂) 극장. 조용하기로 이름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이 이례적이었다. 초연 때부터 줄곧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 김미숙(44)은 "얼굴 분장 지우려고 수돗물을 틀어놓았는데 여전히 박수 소리가 들려 황급히 무대로 다시 나갔다"고 했다.

'코마치후덴'은 일본 현대극을 대표하는 작가·연출가였던 오타 쇼고(太田省吾·1939~2007)의 원작 희곡을 한국 연출가 이윤택(63)이 새롭게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 시즈오카에서 열린 '후지노쿠니 세계연극제'에 공식 참가작으로 초청돼 4~6일 3회 공연했다.

지난 5일 일본 시즈오카 무대예술공원 다엔도 극장에 올린 이윤택 연출 연극‘코마치후덴’공연 장면. 맨 오른쪽이 코마치 역의 김미숙. /연희단거리패 제공
지난 5일 일본 시즈오카 무대예술공원 다엔도 극장에 올린 이윤택 연출 연극‘코마치후덴’공연 장면. 맨 오른쪽이 코마치 역의 김미숙. /연희단거리패 제공
9세기의 여성 시인으로 알려진 코마치는 일본 전통 가무극 노(能)에 등장하는 인물로, 한때 절세미인이었으나 추하게 늙어버린 노파로 나온다. 오타 쇼고는 시대적 배경을 20세기로 바꿔 희곡을 썼고 1977년 초연했다. 백 살 먹은 할머니인 코마치가 죽음을 앞두고 꿈과 현실이 뒤섞인 무대 위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오타는 공연을 앞두고 돌연 원작 희곡의 대사 대부분을 괄호 속에 넣어 버렸고, 실제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침묵 상태에서 공연하게 했다. 1992년 오타로부터 이 작품 연출을 제안받았던 이윤택은 오타 사후(死後)인 2011년 자신의 '코마치후덴'을 부산에서 초연했다. 서울에선 지난해 9월 대학로예술극장, 지난달 게릴라극장에서 두 차례 공연했다.

이윤택의 '코마치후덴'은 오타의 '침묵과 느림의 미학'을 한국적인 리듬과 정서로 새롭게 해석했다. 오타의 희곡에서 '괄호'를 제거하고 대사는 물론 지문까지 배우의 입을 통해 말하도록 했다. 시즈오카 공연의 몇몇 장면에선 배우들이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거나 요란한 군무를 추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선 원일 작곡, 하용부 안무의 한국 가무(歌舞)가 등장했고, 세상을 떠나는 주인공이 일상복 차림으로 무대 뒤편으로 걸어가자 거대한 극장 뒷문이 열리며 무대예술공원의 실제 숲이 펼쳐졌다.

일본 관객은 "참신하고 독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객 니시조노 겐(54)씨는 "여러 인물이 함께 모여 라면을 먹는 장면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한국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인 줄 몰랐다"고 했다. 시즈오카현 무대예술센터 예술총감독인 미야기 사토시(宮城聰)는 "오타의 작품을 오타로부터 해방시켜 영원과 일상을 연결했다"는 찬사를 보냈으나, 1977년 초연 배우인 시나가와 도오루는 "만화처럼 표현된 장면이 있는데, 더 시적(詩的)인 연출이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며 당혹한 표정이었다. 연출가 이윤택은 "한국의 미학은 끝내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죽음을 초월이 아니라 일상 속으로 떠나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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