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 구리야마 연출 "부조리한 세계 그리고 싶었다"

입력 : 2015.04.16 13:48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답한다. 왜 살인을 했냐는 물음에 "태양이 너무 눈부셨다"고.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한 일본 거장 연출가 구리야마 다미야(62·栗山民也)는 자신이 연출한 뮤지컬 '데스노트'에 앞서 뫼르소 이야기를 꺼냈다.

16일 오전 일본 도쿄 캐피톨 도큐 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뫼르소의 경우처럼 "현대에 부조리한 범죄와 사건이 많다"면서 "사신이 보는 가운데 '라이토'와 '엘'이 모두 죽는데 그런 부조리한 세계를 남겨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만화 1장의 테마가 지루함이다. 이 만화가 그려진 2000년 전후에는 일본 뿐 아니라 세계에 중간계급이 많아지면서 가난해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 부조리함으로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가 됐다. 옛날에는 전쟁, 빈곤 등 이유와 동기가 있어 범죄를 일으켰는데 지금의 범죄는 부조리하다."

'데스노트'는 2003년부터 슈에이샤 '주간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 '데스노트'(원작 오바 츠구미·작화 오바타 다케시)가 원작이다. 사람의 이름을 적어 살인할 수 있는 '데스노트'로 악인들을 처단하는 천재고교생 '야가미 라이토'(키라), 그에 맞서는 명탐정 '엘(L)'의 대결을 그린다. 악인을 심판하겠다며 정의에 불타던 라이토는 결국 광기에 사로잡힌다.

구리야마 다미야는 "원작처럼 사신의 손바닥 안에서 인간들이 놀고 있다는 커다란 틀은 가져왔다"고 했다. 다만 "만화는 소설, 문학과 다르게 그림 안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장르라 만화에서 가능한 것과 무대에서 가능한 것은 다르다"고 짚었다.

"기본적으로 연극 무대를 만들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까 고민한다. 연출 의뢰를 받고 만화를 읽었는데 먼저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생각했다. 좋아하는 아동 문학가 중 ('모모'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미하일 엔데가 '벌써 3차 대전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시간의 전쟁이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40초 안에 죽는다. 내게 맨 처음 들린 소리가 40초에서 0초로 가는 초침 소리였다."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로 한국에 마니아층을 구축 중인 미국 출신의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신작으로 이번이 세계 초연이다. 구리야마 다미야가 초침의 소리를 생각할 때 마침 와일드혼이 만든 곡을 보내왔다.

"와일드혼의 음악은 아시겠지만 색채감이 풍요롭다. 오히려 그런 색채감이 풍요로운 음악과는 다른, 무균질한 시계 초침 소리가 들어가면 화학반응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뮤지컬의 마지막에는 와일드혼의 전형적인 아리아 풍의 '레퀴엠'이 흘러나온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이다. "라이토와 엘, 둘다 죽는다. 근데 구원을 남겨두고자 했다. 그래서 와일드혼에게 '레퀴엠'을 부탁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을 구원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계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태양이 또 뜨고 저녁 다음에는 아침이 오고. (라이토와 엘의 대결 역시) 흘러가는 인간의 역사 중 한 조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중요하게 감안한 점은 권당 200쪽 안팎의 12권짜리 만화책을 "요약 버전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엘과 라이토 두 사람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데스노트'가 한국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국 라이선스 초연(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씨제스컬쳐)에서 홍광호가 라이토, 김준수가 엘을 맡기 때문이다. 가창력으로 내로라하는 두 배우가 동시에 한 무대에 맞대결을 벌인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구리야마 다미야는 6월 라이선스로 한국 초연하는 '데스노트' 연출도 맡는다. "두 배우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새로운 컴퍼니를 만나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까 기대 중이다. 그것은 연습을 하면서 나올 것이다."

한국과 인연이 있다. 2012년 '국립극단 해외연출가 초청공연'을 통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선보였고, 이듬해에 뮤지컬 '쓰릴미'를 연출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 연출 당시 아버지 역의 이호재 배우랑 술을 마시는데 유진 오닐이 쓴 원작의 미국 가정처럼 한국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더라. 그 때 '풍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닐의 작품이니 그의 세계로 점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한국 공연은 일본과 같은 형태라고 했다. "일본에서 공연(지난 8일 도쿄 닛세이극장에서 개막)하고 시간이 지났으니 장면을 보강하고 무대를 더 살리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18세 때 처음 서울에 갔다는 그는 "한국과는 오랫동안 교류를 쌓고 있다. 일본에 신국립극장이 생겼을 때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한일이 공동으로 참여한 작품을 두 편 만들었다.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친근한 나라"라고 알렸다.

홍광호와 김준수가 모두 한국에서 대스타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부분은 자신과 상관이 없고 "역할에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점점 광기를 띠며 변화되는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다만 무대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과 일본에서 선보이는 '데스노트'가 기본적으로 같지만 한국 배우들이 동물적이라 그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표현하는 것들 그로 드라마가 탄탄해지라 믿는다."

사무엘 베게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의 키워드는 '기다림'이었다고 했다. 당시 "기다리면 행복과 풍요로움이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데스노트'가 그린 21세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즉 허무다.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 지, 그것조차 모르는 세대. 그 키워드가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으면 좋겠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요점 젊은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짚었다. "그러니 싸우지 않고 사랑도 안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끝나면 집에서 컴퓨터 안에서 자신을 보는 세대다."

하지만 연극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1975년 와세다대 연극과 졸업한 구리야마 다미야는 1980년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오델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갈매기' 등을 연출해 '요미우리 연극대상' '아사히 무대예술상' 등을 받았다. 오페라, 뮤지컬을 오가는데 이들 장르에도 연극적인 특색이 묻어난다.

"극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곳이라 믿는다. 그래서 극장에서 무엇인가 만나고 느끼고 부딪혔으면 좋겠다. 뮤지컬이라서 이래야 한다, 연극이라서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무엇인가 생겨나고 그것이 무대라고 생각한다."

'데스노트'에서는 엘과 라이토를 둘러싼 군중들이 점점 변해가는 부분을 느꼈으면 했다. "그런 경우가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극 중에서 엘과 라이토가 자신들은 죽을 힘을 다해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두 사람의 심리전을 대변) 극 중에서 이를 보는 군중들은 무책임하게 반응한다. 아무런 의식 없이 이를 지켜보는 군중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 공연에서도 자신이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라 여기는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같이 부딪히면서 "인간의 심리를 끌어내고 싶다"고 했다. "엘과 라이토처럼 배우들이 나와 심리전을 하면서 태어난 것이 작품에 반영될 것이다. 한국의 데스노트는 그래서 일본의 카피 버전이 아니라고 생가한다. 한국 버전의 데스노트라 생각한다."

'데스노트' 6월20일부터 8월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홍광호와 김준수를 비롯해 정선아, 박혜나, 강홍석 등 모든 출연진이 원캐스트다. 2시간45분(인터미션 포함). 5~14만원. 클립서비스.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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