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 바삐 오르는 그녀의 곡, 그녀의 음악

입력 : 2015.04.14 01:08

[작곡가 진은숙,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서 사상 첫 프리미어賞]

베를린 필·보스턴 심포니가 작품 연주하는 한국 작곡가
2018년, 英로열오페라 위촉한 '거울 뒤의 앨리스' 초연 앞둬
"韓연주자, 세계 활약 도울 것"

작곡가 진은숙(54)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훨씬 더 유명하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곡가도 거의 없지만, 베를린 필하모닉과 보스턴 심포니 같은 서구 정상급 교향악단이 요즘도 작품을 연주할 만큼의 톱클래스 작곡가로는 진은숙이 유일무이하다.

진은숙이 쓴 협주곡 3개를 담은 도이체그라모폰 음반(2014년)이 지난주 세계적 권위의 BBC 뮤직 매거진상(賞)의 프리미어 부문을 수상해 재차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부터 상임 작곡가로 있는 서울시향이 연주한 음반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지난 9일 만난 진은숙은 "서울시향과 정명훈 감독, 협연자들이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라면서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작곡가 진은숙이 베를린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집 뒤편에 작업실이 있는데, 거긴 피아노도 없고 책상과 의자 하나만 달랑 있다”고 했다. /서울시향 제공
작곡가 진은숙이 베를린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집 뒤편에 작업실이 있는데, 거긴 피아노도 없고 책상과 의자 하나만 달랑 있다”고 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의 연주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우선 기쁩니다.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받은 상(賞) 중에 가장 큰 상이고요."

올해 BBC 뮤직 매거진상은 작년 이 잡지가 리뷰한 음반 1500여개 중 최고 평점을 받은 200여개를 대상으로 10개 부문 수상자를 가렸다. 이 중 클래식 역사상 처음 녹음·발매된 음반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어' 부문은 대니얼 하딩의 런던 심포니, 블라디미르 유롭스키의 런던 필하모닉 등이 참여한 12개 음반이 최종 경합을 벌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진은숙은 "피아노 협주곡은 서른 중반에 작곡가로서 처음으로 메이저 교향악단에서 위촉을 받고 쓴 곡이라 사활(死活)을 걸었다. 이 곡을 쓰면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저혈압이 고혈압으로 바뀌어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향 음반에는 김선욱이 협연했다. 진은숙은 "김선욱은 음악적 깊이가 보기 드문 연주자예요. 선욱이를 만날 때면, 나를 위해 피아노를 쳐달라고 연주를 부탁해요"라고 했다. "제가 피아노곡을 쓴다면 다음은 선욱이를 위한 작품일 겁니다.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와 듀오를 위해 작품을 쓸 생각도 하고 있고요."

2007년 쓴 첼로 협주곡은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를 염두에 두고 쓴 곡. "알반 때부터 처음 특정 연주자를 생각하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람을 아니까 훨씬 더 구체적으로 쓸 수 있었어요. 3, 4악장을 써놓고, 1악장이 생각나지 않아 몇 달간 고생했지만요."

생황 협주곡(2009년)은 두 달 만에 쉽게 썼다. "베를린의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우웨이가 생황을 연주하는 걸 봤는데, 상상 이상의 연주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당신을 위해 작품을 쓰겠다고 했지요."

진은숙의 작품은 올해도 세계 주요 무대에 바쁘게 올라간다. 오는 6월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사이렌의 침묵'을 독일에서 처음 선보인다. 11월엔 보스턴 심포니가 그의 오케스트라곡 '마네킹'을 4회 연주한다. 2018년엔 영국 로열 오페라가 위촉한 '거울 뒤의 앨리스' 초연도 기다리고 있다.

진은숙은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구미 음악계는 상당히 배타적입니다. 프랑스는 자국 연주자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거든요. 이제 우리 연주자들 실력도 해외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는데, 집단으로는 아직 힘이 없어요.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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