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앞 상설 무대로 공연의 場 도울 계획"

입력 : 2015.04.10 01:43

[한국메세나협회장 맡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일반가정 평균 문화 수준 올라… 흐름 발맞춰 기업이 지원해야
연극 등 다소 소외된 장르에도 기업마다 특화된 지원 독려해"

9일 박삼구(70)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인터뷰하러 서울 광화문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에 갔더니 '예술'이 마중 나와 있었다. 후문 벽면을 장식한 도예가 신상호의 '도자 그림' 아래를 통과해 로비에 들어서자 존 폴 필립의 유선형 철제 조각이 나타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이 있는 27층에 내렸다. 이번엔 수화 김환기의 푸르스름한 추상화, 캔버스 가득 알록달록한 이대원의 유화 '산'이다.

"우리 어르신(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이 예술가들하고 참 격의 없이 지내셨지요. 우리 집이 국창 임방울 선생, 의재 허백련 화백,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 이런 분들 사랑방이었어요. 중학생이던 제가 선생님들 수발 들었고요. 소전이 글씨 쓰면 옆에서 먹 갈았고, 임방울 선생이 창 하시면 청주 나르고 그랬습니다. 그때 듣는 귀가 뚫리고 보는 눈이 생겼지요." 박 회장이 빛바랜 추억을 꺼내 들고 회상에 잠겼다.

“예술 공헌은 ‘나는 손해 보고 너만 좋게 한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돼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마음으로 신나서 해야지요.” 이대원의 그림 ‘산’을 배경으로 앉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말했다. /이태경 기자
“예술 공헌은 ‘나는 손해 보고 너만 좋게 한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돼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마음으로 신나서 해야지요.” 이대원의 그림 ‘산’을 배경으로 앉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말했다. /이태경 기자
박 회장은 지난 2월 제9대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메세나협회는 1994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주축으로 창립한 단체로 기업의 문화 활동을 지원한다. 5대 회장은 박 회장의 큰형인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었다. 한 기업에서 회장을 두 번째 맡는 건 처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형님이 한 대로만 하겠다, 안 그러면 불경하다'는 생각으로 일해야지 합니다." 박 회장은 형의 유지를 받들어 클래식 후원 활동을 이어가고, 단편 영화제도 지원한다. '한국의 메디치가(家)'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문화 후원에 적극적인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룹이 워크아웃 위기를 겪었을 때도 문화 지원은 계속했다.

친문화적 기업인인 그의 취임에 문화계의 기대가 적잖다. 박 회장은 "예술은 배고플 땐 눈에 안 들어온다. 그런데 사회 전반적으로 차츰차츰 '부의 축적'이 이뤄지고 있다. 재벌 얘기만이 아니다. 일반 가정의 경제 수준도 수십 년 전보다는 좋아졌다. 그만큼 평균적 문화 수준이 올라갔다는 얘기다. 이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기업들이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수년간 기업들의 문화 후원이 늘어났지만, 막상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기업의 문화 기여도는 높지 않다. 더 많은 이가 누리는 문화 지원 정책은 없을까. 박 회장은 "예술 대중화의 관건은 결국 '액세스(access·접근)'하기 쉽게 하는 것이다. 공연 보러 일부러 발걸음 옮기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행인들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예술을 고민했다"며 "그래서 시청 앞 '서울광장'에 상설 무대를 만들어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힘을 모으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 했다. "광장인데 거의 시위가 끊이지 않아요. 광장에 상설 무대를 설치해 놓고 인디 가수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장을 만드는 겁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하는 야외 공연 '발트뷔네' 같은 행사도 하고요. 그러면 관광객들도 와서 맥주 한잔하고, 결국 문화 명소가 되겠지요." 조만간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협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겹치기 문화 지원보다는 기업마다 특화된 문화 지원을 독려해 연극 등 예술 지원에서 다소 소외된 문화 장르에도 기업의 손길이 뻗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부의 '문화가 있는 날' 시행 기업을 지방까지 확대하고, 임기 내에 예술 기부금 지출액의 10% 추가 공제 등을 내용으로 한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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