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10 01:05
이은결의 매직 콘서트 '더 일루션'
"저… 앞에 건 못 보셨죠?" 공연 시작 10분쯤 지나 지연 관객이 입장하자, 무대에 선 마술사 이은결(34)이 허탈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그가 장막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헬리콥터 문을 열고 등장하고는, 상자 속에 들어간 미녀를 9등분하고, 칼로 상자를 찌른 뒤 사라진 미녀가 무대 뒤편에서 나타나는 마술을 숨 가쁘게 펼치고 난 뒤였다. "미쳤나봐요, 오프닝에 이런 걸…"이라며 땀을 닦고는 곧 활기찬 표정으로 외쳤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지난주 개막한 이은결의 매직 콘서트 '더 일루션(The Illusion)'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마술(魔術)을 세 시간 분량의 대형 공연으로 정착시킨 모범사례라 할 만했다. '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유려한 스토리텔링과 고난도의 기술, 능수능란한 쇼맨십을 통해 "마술은 물론 가짜다, 그러나 사기가 아니라 환상"이란 메시지를 객석에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모자와 카드, 비둘기가 나오는 복고풍 마술부터 증강현실(실세계에 3차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을 응용한 첨단 마술까지, 그의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마술은 현실과 환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꿈의 매개체'라는 주제다. 마술사의 모자에서 상상의 씨앗이 자라 거대한 나무를 만드는 그림자극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은결의 긴 손가락은 무대 위에서 발레를 추고 앵무새를 머리 위로 날려보내더니, 순식간에 관객을 아프리카 대자연으로 초대한다. 환상적인 분위기가 지나쳐 2막에서 다소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쉽다.
제작진은 '1급'이라 할 만하다.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매직 디렉터였던 돈 웨인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이동욱(사진), 권자영(의상), 홍세정(안무), 정연두(미디어아트) 등 실력파들이 스태프로 참여했다.
▷4월 12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공연 시간 165분,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