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침묵마저 무대 위 고이 쌓였다

입력 : 2015.03.05 03:00   |   수정 : 2015.03.05 10:12

[연극 '3월의 눈' 연습현장 가보니]

주연으로 호흡 맞춘 신구·손숙, 표정·몸짓만으로도 무대 채워
손진책 "표정 딱딱하다" 지적에 손숙, 순식간에 눈가 촉촉해져

"아니, 그렇다고 그냥 와요? …나선 김에 숙이네 미용실이래두 가서 깎아 달래지."(손숙)

"거긴 영 마뜩잖아서. 내 머리는 가위로 깎아야지, 바리깡질 하면 못쓰거든. 뒤통수가 기울어 놔서."(신구)

"기울든 말든 노인네 머리 누가 보기나 한답디까?"(손숙)

두 배우의 대사가 허공에 망연히 박히는 듯했다. 쓸쓸하리만큼 잔잔한 몇 차례 대사와 몸짓, 표정만으로도 긴 세월의 더께가 무대 위에 쌓였다. 침묵과 여백까지도 대사의 일부 같았다. 지난 3일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의 올해 첫 작품인 연극 '3월의 눈'(배삼식 작, 손진책 연출) 연습이 진행된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였다.


 

지난 3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배우 손숙(왼쪽)과 신구가 연극 ‘3월의 눈’을 연습하는 모습을 연출가 손진책(오른쪽)이 지켜보고 있다. /이진한 기자
지난 3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배우 손숙(왼쪽)과 신구가 연극 ‘3월의 눈’을 연습하는 모습을 연출가 손진책(오른쪽)이 지켜보고 있다. /이진한 기자
3일 국립극단의 올해 첫 연극 손진책 연출의 '3월의 눈'이 개막을 앞두고 주연 신구와 손숙씨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에서 연습이 한창이다./이진한기자

'3월의 눈'은 2011년 초연 때 전설적 배우들인 백성희와 고(故) 장민호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다. 오래 묵은 한옥을 배경으로 노부부 '장오'와 '이순'의 하루를 담채화(淡彩畵)처럼 그렸다. 장오는 손자를 위해 마지막 재산인 집을 팔아 요양원으로 가야 할 처지고, 집은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겨우내 묵었던 문창호지를 새로 바를 준비를 하며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한다. 이순이 지나치게 담담해 보였던 이유가 밝혀지는 반전(反轉)이 뒤에 가서 나온다.

다섯 번째인 이번 공연에선 주연배우 두 명이 모두 바뀌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구(장오 역)와 손숙(이순 역)이다. 연습 광경을 지켜보던 연출가 손진책이 "표정이 너무 딱딱해요!"라고 지적하자 조용히 대사를 속삭이던 손숙의 눈가가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거칠게 살아온 삶을 뒤로하고 떠나려는 듯 탁음(濁音)을 뱉어내던 신구는 "이젠 집을 비워 줄 때가 된 거야…"라며 회한 어린 표정을 지었다. 헌 문창호지를 떼내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입으로 물을 뿜는 장면에서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진책 연출은 "배우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오는데, 두 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역할을 맡아 온 것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5년 만에 되살아난 '국립극단 단원'들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연극이기도 하다. 국립극단이 지난달 선발한 시즌 계약단원 17명 중 10명이 출연하는 것. 새 집주인 '용철'역의 김정호는 악질 철거반장 같은 역할을 소화했고, 노숙자 '황씨'역의 이종무는 대사 없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극 '3월의 눈' 13~2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1688-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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