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대신 인생 가르쳤던 아버지… 그게 결국 음악을 배운 거였죠"

입력 : 2015.02.24 00:02

[첫 트롬본 음반 낸 정중화]

韓재즈 1세대 정성조 아들, 원래는 베이스 연주자
"내가 직접 만든 멜로디… 가장 잘 연주하는 것도 나"

노랫말 없는 연주곡은 멜로디가 가사다. 정중화(44)가 트롬본으로 연주한 곡 'Father'를 들으면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장조(長調)로 시작한 멜로디가 얼핏 느린 왈츠처럼 듣는 이를 이끌어 가는데, 그 가볍고 견고한 스텝을 일렉기타가 처연하게 허물어뜨린다. 이어 받는 피아노 역시 끊어질 듯 위태롭게 멜로디를 변주한다. 다시 트롬본이 받을 때의 멜로디는 처음과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마지막 피아노는 병상 옆 심박기 화면처럼 아슬아슬하다. 재즈 트랙으론 매우 짧은 3분26초짜리 이 소품의 멜로디를 정중화는 아버지 병실을 지키면서 썼다고 한다. 아들에게 늘 '넘을 수 없는 산'이었던 색소포니스트 정성조는 끝내 이 곡을 못 듣고 작년 10월 작고했다. 한국 재즈를 이끈 엘리트 뮤지션이자 지칠 줄 모르는 탐구자의 갑작스러운 영면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트롬본이 리더인 재즈 앨범은 흔치 않다. 정중화는 “내가 모두 작곡한 앨범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트롬본이 리더인 재즈 앨범은 흔치 않다. 정중화는 “내가 모두 작곡한 앨범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가 정성조의 아들이란 게 너무 싫었어요. 저도 음악을 하는데 어딜 가나 '네 아버지가 어떤 분인 줄 아느냐'는 말만 들었죠. '나는 평생 아버지 그늘에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중화는 "아버지는 음악을 가르쳐준 적이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만 가르쳤던 매우 엄했던 분"이라며 "그것이 결국은 음악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베이스 연주자인 그가 트롬본을 연주한 첫 앨범 'Autumn Rain'을 낸 것은 작년 11월이었다. 앨범 속지엔 '이 앨범을 꼭 내고 싶어 열심히 작업했다'는 글이 쓰여 있다. 아버지께 드리고 싶었겠으나, 발매를 1주 앞두고 암세포가 부자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그는 "그렇게 돼서 앨범 나왔다고 알리지도 못했다"며 뒤늦게 음반을 건넸다.

"베이스는 밥 굶지 않는다"는 아버지 말에 따라 베이스를 배웠던 그는 미국 뉴욕 뉴스쿨과 퀸스칼리지에서 재즈를 공부했다. 35세 때 배우기 시작한 트롬본은 "베이스처럼 저음을 내는 악기여서 잘 맞았다"며 "색소폰은 '아버지의 악기'라서 감히 하지 못했다"고 했다.

총 9곡이 실린 앨범은 트롬본 리더작치곤 트롬본 연주가 매우 적다. 비밥 파트는 기타와 피아노가 도맡다시피 했다. 단조로운 발라드를 타는 트롬본의 쓸쓸한 울음이 젖은 낙엽처럼 애처롭다. 이태원 클럽 올댓재즈에서 퀸텟을 이끌며 색소폰을 불던 정성조의 쿨사운드가 떠오른다.

"제가 트롬본으로 비밥 연주를 하는 건 아직 욕심이에요. 좀 더 대중적으로 만들고 싶었고 특히 멜로디를 제가 다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쓴 멜로디 느낌은 제가 가장 잘 연주할 수 있으니까요."

정중화는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명을 받아 4년간 재직한 서경대에서 서울종합예술학교로 지난 학기 자리를 옮겼다. 서울예대 학장으로 오래 일했던 아버지가 정년퇴임 후 뉴욕 유학 다녀와서 후학을 가르치던 학교다. "아버지가 빅밴드 편곡을 100곡 정도 해놓으셨어요. '내 악보를 아들이 맡아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유언처럼 하셨죠. 당분간 아버지의 마지막 편곡 작품들을 하나씩 연주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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