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유럽 대표 오페라 극장)' 代打 제의 거절했다… 완벽한 무대 위해

입력 : 2015.02.15 23:32

[세계 3대 극장 휩쓴 테너 김우경]

"아무리 좋은 배역이라도 준비 없이 노래할 수 없어"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 지난달 뮌헨 '라 보엠'도 호평

테너 김우경(38·한양대교수)은 완벽주의자다. 갑자기 통보를 받고 대타(代打)로 무대에 선 적은 한 번도 없다. "남들처럼 자고 일어나서 바로 노래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몸이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무대에 오르지 않습니다."

한번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했다. 아침에 극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빈에서 '라 보엠' 주역이 펑크를 냈대. 12시 20분 비행기를 타면 공연할 수 있으니 빨리 준비해. 우린 대타를 쓸 테니까." 김우경은 단번에 "노"(NO) 했다. "내 몸은 지금 오늘 저녁에 공연할 '라 트라비아타'에 맞춰져 있다. '라 보엠'은 무슨." 함부르크 극장에선 한동안 "쟤는 빈 국립오페라에서 불렀는데도 안 갔다"며 화제가 됐다.

지난달 31일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출연자 대기실에서 공연 직전 만난 김우경. 오른쪽은 2010년 런던 로열오페라에서 올린 베르디 오페라‘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으로 출연한 테너 김우경. /런던 로열오페라 제공
지난달 31일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출연자 대기실에서 공연 직전 만난 김우경. 오른쪽은 2010년 런던 로열오페라에서 올린 베르디 오페라‘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으로 출연한 테너 김우경. /런던 로열오페라 제공
지난달 31일 독일 뮌헨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서 만난 김우경의 '라 보엠'은 그럴 만했다. 김우경은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가난한 연인 로돌포를 불렀다. 뮌헨 극장 관객들도 피날레에서 미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김우경이 울부짖는 외침에 눈물을 적셨다. 막이 내려오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요즘 뜨는 루마니아 신예 소프라노 아니타 하르틱(Hartig·32)이 미미를 불렀지만, 가장 주목받은 이는 김우경이었다.

공연 3시간 전, 김우경을 극장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차로 15분 거리인 호텔에서 막 도착했다고 했다. "늦어도 공연 3시간 전엔 극장에 나옵니다. 공연 날엔 새벽 3~4시쯤 자서 낮 1~2시쯤에 일어나요. 점심을 먹고 바로 극장에 와서 목을 풀지요. 인터넷 들여다보지 않고 쓸데없는 전화도 받지 않고 공연에만 집중합니다."

김우경은 2003년 독일 드레스덴 국립오페라 극장 전속 가수로 들어가면서 이듬해부터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마술피리'의 타미노 왕자, '리골레토' 만토바 공작,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파우스트' 주역, '라 보엠' 로돌포를 했다. 2007년 소프라노 홍혜경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라 보엠' 남녀 주역으로 서면서 화제를 모았다. 124년 메트 역사상 남녀 주역이 모두 한국인으로 채워진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해 말엔 런던 로열 오페라에 '리골레토'로 데뷔했고, 2013년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맥베스' 역 맥더프로 데뷔했다.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을 모두 휩쓴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공연에 만족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스타일이죠.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만족해야 하는데요."

2011년 국립오페라단 '파우스트'에도 출연해 보석 같은 소리를 들려줬다. 이듬해인 2012년, 한양대 교수로 부임했다. 서른다섯 나이였다. "평소에도 연 40~50회 정도밖에 오페라를 하지 않는데요. 학교에 오니 절반 이하로 횟수가 줄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면서 연주자로 사는 게 쉽지 않네요."

한양대 연구실에서 그는 늘 밤늦게 퇴근하는 교수로 소문났다. "같은 학교에 있는 고성현(바리톤) 선생님도 밤 12시까지 연습하고 퇴근하면서 제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불러요. '우경씨, 집에 가자' 하면서요." 김우경의 오페라 여정은 이어진다. 오는 4월 네덜란드 국립오페라 '맥베스' 주역 맥더프로 암스테르담에서 데뷔하고, 5~6월엔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시몬 보카네그라' 주요 배역 가브리엘레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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