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뒤 인문학] 신화 깔린 과거·현재의 對面… 한국인은 다 안다

입력 : 2015.02.05 00:51

[2] 이윤택 연극 '어머니'와 단군 신화

주인공 아파트 창문으로 죽은 남편이 들어와 대화, 시간·공간·인물 모두 해체
"신줏단지·환웅·마늘·쑥… 민족神話 요소 극에 녹여"

무대 위에서 연기에 몰두하던 손숙은 너무 놀라 대사를 잊어버릴 뻔했다. 객석 한가운데 하얀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꼿꼿이 앉아 있는 백발 여인은 분명 오래전 별세한 그의 어머니였다. 연극 '어머니'(작·연출 이윤택)를 고향인 경남 밀양에서 처음 공연하던 2001년의 일이다. 감정이 북받쳐 엉엉 울다시피 하며 간신히 연극을 마치자 연출가 이윤택이 흥분하며 달려왔다. "선생님! 오늘 연기 진짜 최고였습니데이~."

15주년 기념 공연 중인 연극 '어머니'는 이런 손숙의 환영(幻影)처럼 전개된다. 첫 장면부터 중절모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아파트 창문으로 들어오는데, 그는 이미 죽은 남편이다. 1999년 초연된 이 작품은 해외 평자들로부터 '무척 실험성이 강한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이란 평을 들었다. 이야기의 해체(解體)가 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공간이 뒤섞여 양쪽 시간대의 인물이 대화를 나누고, 스토리는 연대기적 순서와 무관하게 전개된다.

이윤택 작·연출, 손숙 주연의 연극 ‘어머니’ 중 현재 시점의 어머니가 과거 인물들과 한 장면에 동시에 나온 모습. /명동예술극장 제공
이윤택 작·연출, 손숙 주연의 연극 ‘어머니’ 중 현재 시점의 어머니가 과거 인물들과 한 장면에 동시에 나온 모습. /명동예술극장 제공

놀라운 것은 한국 관객들이 이런 '해체'를 어려워하기는커녕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극에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윤일수 강원대 교수의 논문 '이윤택의 어머니 연구'(2008)는 이 같은 해체가 개화기의 사설시조나 누항(陋巷) 가사, 현대의 마당극 운동에서 따온 양식으로 보았다. 관객 몰입을 일부러 방해하는 브레히트식 '낯설게 하기'의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들어가면 민족적 정체성이 깃든 신화적(神話的) 요소가 극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이 손주에게 들려주는 '양산복과 수영대' 이야기는 고소설 '양산백전'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은 일본의 지모신(地母神) 신화와는 달리 하늘에서 내려오는 적강(謫降·신이 인간 세계로 내려옴) 신화의 요소를 지녔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시집간 주인공이 은연중에 '우리 민족은 일본과는 무관한 북방 문화의 계승자'라고 말하는 셈이다.

주인공이 신줏단지에 대해 설명하며 "환웅 천제께서 여기다 마늘하고 쑥을 채곡채곡 넣으셨다"며 단군 신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여기 들어 있는 거 다 풀어내믄 그기 우리 여자들 인생이고 역사"라고 말한다. 고통을 인내하는 한국 어머니들의 자세 역시 지극히 오래된 민족적 특성이라는 얘기다.



▷2월 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연 시간 120분,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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