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권력에 희생된 비극 영웅… 장엄한 여운을 안겨주다

입력 : 2015.01.29 00:02

로빈훗

개막 시점이 절묘했다. 뮤지컬 '로빈훗'(한스 홀츠베커 작, 왕용범 연출)은 "세금을 과도하게 걷어 백성을 쥐어짠다"고 폭정을 묘사하는데, 일부 네티즌은 이 작품을 '연말정산극'이라 부른다. 올해 두 번째 대형 라이선스 신작이며, 숱한 소설과 영화에 나온 전설 속의 중세 호걸이 주인공인 '로빈훗'은 뜻밖에도 독일산(産)이다.

어쩌면 뻔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무대 위에 옮겨지는지가 관건일 터. 셔우드 숲과 12세기 궁정을 표현한 무대는 신비로운 기품마저 느껴졌으며, 이야기의 잔가지를 쳐내고 질주하는 극 구성과 장면 전환은 매끄러웠다. 지난해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성공을 이끈 연출가 왕용범은 칼과 화살이 난무하는 액션을 장중하고도 긴박감이 넘치는 장면으로 구현했다.

'로빈훗'의 주연을 맡은 이건명. /엠뮤지컬아트제공
'로빈훗'의 주연을 맡은 이건명. /엠뮤지컬아트제공
그러나 이것은 '삼총사'나 '조로' 같은 권선징악식 활극이 아니다. 주인공은 의적(義賊)이라기보다는 찬탈과 배신의 거대한 권력 암투 속에서 적통 옹립의 정변에 가담하다 희생되는 비극적 영웅의 캐릭터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정치적 허무함이며, 암울하고 무거운 정조가 긴 여운을 남겼다. 한마디로 '유럽 누아르 뮤지컬'이라 부를 만했다.

음악도 나쁘지 않았다. 주제곡 격의 1막 '폭풍이 다가온다', 발라드풍의 2막 '변명' 등 고난도 코드와 멜로디를 갖춘 넘버(삽입곡)들은 독일 뮤지컬다운 중후한 맛을 냈다. 로빈 역의 이건명은 등장만으로도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작년 세 편의 뮤지컬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규현은 아직 비극 연기는 어색했으나, 뛰어난 가창력으로 모성 본능을 끌어내는 필립의 캐릭터를 살렸다.

다만 이 작품은 큰 오류를 남겼다.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리처드 1세가 동생 존 왕을 몰아내고 복위한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뮤지컬은 그가 감옥 안에서 맥없이 죽는 것으로 묘사했다. 남의 나라 역사라고 해서 명백한 팩트까지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뮤지컬 장르에 그런 허가를 내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3월 29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공연 시간 150분, (02)764-78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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