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관람한 부부, "있을 때 잘할게"라며 손 잡아

입력 : 2015.01.29 03:00   |   수정 : 2015.02.04 15:23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임호·권진]
"남자의 첫 대사 '오랜만이야…' 그리움·미안함 농축돼 어려워"

의자에 앉은 젊은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처음 이 반지를 끼던 날 기억난다. 그때는 우리도 이 돌처럼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이 지친 듯 여자에게 기댄다. "여보, 나 한 번만… 안아줄래?" 암전이 되자 객석 곳곳에서 그동안 흐른 눈물을 한꺼번에 닦느라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박춘근 작, 김낙형 연출)의 절정 부분, 배우 임호(45)와 권진(33)의 연기는 관객의 몰입을 최고조로 이끌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몽주 역을 맡아 좀 일찍 하차했는데요. 연극 제작자인 조재현 선배가 미리 대본을 주면서 '연말에 별일 없지?'라고 꼬시더라고요."(임호) "작년에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오디션을 봤었는데 '좀 기다렸다 나오라'고 하더니 이 연극이었어요."(권진)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 출연하고 있는 임호(왼쪽)와 권진. 젊어서 상처한 남편이 세월이 흐를 때마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 대화하는 이야기다. /성형주 기자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 출연하고 있는 임호(왼쪽)와 권진. 젊어서 상처한 남편이 세월이 흐를 때마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 대화하는 이야기다. /성형주 기자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 부부로 출연하는 임호와 권진. / 2015.01.16. 서울 종로구 수현재씨어터. / 성형주 기자

'이혼 방지 특효약'이라는 말을 들으며 중장년 관객을 대학로로 끌어들이는 이 연극은 연기하기 쉽지 않다. 주인공 안중기는 30대부터 60대까지 세월이 조금씩 흐를 때마다 죽은 아내 오지영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가 만나는 아내는 영혼일 수도, 상상일 수도 있다. 임호는 철없는 개구쟁이 남편처럼 등장해서 너스레를 떨다가도, 갈수록 깊은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신비로운 눈빛을 지닌 채 망연히 무덤가에 앉아 있던 권진은 "언젠가 당신이 돌아올 줄 알고 기다렸다"는 한(恨)을 속삭인다.

임호는 첫 장면에서 꽃다발을 든 남자의 첫 대사인 "오랜만이야"가 무척 어려웠다고 했다. "그리움과 외로움, 미안함, 설렘이 그 대사에 농축돼서 들어 있어요. 저희끼리 '첫 장면만 넘어가면 그날 공연은 성공'이라는 말도 하죠." 그가 보기에 안중기는 다른 많은 남편처럼 아내와의 소통에 미숙했던 사람이다. "제가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까 '실제의 나'와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에 차이가 있더라고요. 안중기는 아내가 진짜 원하는 게 실제 모습이란 걸 몰랐던 거죠."

권진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남자들 역시 많이 힘들고 외롭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20대 시절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막 터지려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워요. 정말 많은 감정을 쏟아낸 뒤라서요." 연기 경험이 짧은 권진은 이광기·이한위·황영희 같은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하는 이번 연극 출연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임호는 권진에 대해 "굉장한 노력형 배우"라며 "동적인 외면 연기와 정적인 내면 연기를 잘 배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관람 후기에서 '있을 때 잘해야겠다' '자기야, 날 두고 먼저 가지 마'란 말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냥 열린 마음으로 보고 가세요. 분명 인생에서 뭔가 달라진 게 있을 겁니다."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3월 1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02)766-6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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