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舊 대표 여배우 손숙·김소희… 연극 '어머니'서 연기 대격돌]
한국적 어머니 15년 연기한 손숙 "10년 뒤, 소희에게 役 물려줄 것"
며느리 맡은 '최고 연기력' 김소희… 99년 초연부터 조연출로 함께해
"소희는 뭐,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분석력이나 리더십, 사람됨…. 칭찬하지 않을 게 없어요. 같이 연극을 하면 이제는 혈육 같아요."(손숙)
가끔은 '캐스팅만 봐도 심장이 뛰는 연극'이 있다. 이달 말 15주년 기념 공연이 열리는 연극 '어머니'(이윤택 작·연출)가 꼭 그렇다.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여배우의 신구(新舊)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손숙(71)과 김소희(45)가 고부(姑婦) 역할로 함께 출연하기 때문이다.
손숙은 지난해만 해도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엄마를 부탁해' '가을 소나타' 등 굵직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국가대표급(級) 여배우이고, 김소희(연희단거리패 대표)는 2013년 '혜경궁 홍씨'로 평단을 경악시킨 뒤 지난해 '맥베스' '고곤의 선물' 등에 출연해 "최고의 연기력을 지닌 배우"란 찬사를 들은 배우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함께 '어머니'를 했었다. 1999년 정동극장에서 초연할 때 29세였던 김소희가 조연출을 맡았던 것. 김소희는 모스크바 타캉카 극장에서 있었던 그해 5월 공연을 잊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15분 동안 기립박수를 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갑자기 액운이 시작됐다.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손숙이 공무 때문에 비행기를 먼저 타러 극장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 김소희의 눈에 손숙이 돌연 허공으로 붕 뜨더니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팔뼈에 금이 간 손숙은 비행기에서 정신을 잃었다. 귀국 얼마 뒤엔 '어머니' 공연 중 격려금을 전달받은 게 문제가 돼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영광과 추락의 사연을 모두 지닌 이 작품은 이후 손숙의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됐다. 김소희는 "그전까지 선생님은 도회적이고 서구적인 역할을 주로 맡으셨는데, 이 작품으로 따뜻한 한국의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게 됐다"고 했다. 손숙은 15년 동안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머니'를 공연했다. 손숙이 바로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곧 손숙이었다.
'이윤택 사단'의 일원인 김소희 역시 함께할 때가 많았다. 손숙이 말했다. "소희가 이 연극에서 무당 역할을 맡으면요, 감정을 둘둘 말아서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요. 마지막 장면에서 슬쩍 보면 늘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어요. '어머, 어떻게 저런 애가 있담' 하고 생각했죠."
연극 '어머니'는 모성(母性)의 재발견을 화두로 한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남편의 바람기, 자식의 죽음까지 감당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회상과 현재,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가 한데 어울리는 연극적인 표현으로 객석에 전달된다.손숙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도 많이 하는 솔직하고 긍정적인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김소희의 며느리 역할 역시 시어머니와 갈등만 일으키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사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며느리예요. 아침 밥상을 놓고 시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며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결국 '엄마'라는 존재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있죠." 손숙은 초연 때 "앞으로 20년 동안 '어머니'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좀 말이 바뀌었다. "한 5년 연장해서 10년만 더 하면 안 될까? 그다음엔 소희한테 물려주려고. 그런데 얘는 시집가서 애 낳아 본 경험이 없으니 어쩌나…."
▷연극 '어머니' 1월 31일~2월 16일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