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죽음을 동경한 소년, '소녀 조르바'를 만났네

입력 : 2015.01.12 00:59

[해롤드 & 모드]
박정자·강하늘 무대서 첫 호흡

분장을 지우는 배우 박정자(73)에게 "'여자 조르바' 같다"고 했더니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라며 반색했다. 9일 개막한 연극 '해롤드 & 모드'(콜린 히긴스 원작, 양정웅 연출)의 주인공인 모드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처럼 이 황막한 세상에서 끝없는 자유를 꿈꾸는 캐릭터라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 주연으로 돌아온 '연극계 대모(代母)' 박정자는 이 무대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했다. 어머니처럼 자상하다가도 소녀처럼 천진난만했고, 한껏 익살스럽게 수다를 떨다가도 깊은 눈빛으로 슬픔과 안타까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발성은 정확하고 능란했다. 해롤드와 함께 나무 위로 올라가려는 장면에서 "난 흙의 느낌이 좋아. 그리고 흙 냄새도…. 대지(大地)는 나의 몸, 내 정신은 별들 속에 있어"라고 말할 때는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처럼 보였다.

연극‘해롤드 & 모드’의 19세 소년 해롤드 역 강하늘(왼쪽)과 80세 할머니 모드 역 박정자. /샘컴퍼니 제공
연극‘해롤드 & 모드’의 19세 소년 해롤드 역 강하늘(왼쪽)과 80세 할머니 모드 역 박정자. /샘컴퍼니 제공

198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죽음을 동경하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유쾌하고 발랄한 80세 할머니 모드를 만나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줄거리다. 이것은 결국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한 어린 남자가 인생의 진정한 멘토를 만나 새롭게 눈을 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드는 기존 사회의 통념이나 편견 같은 온갖 '찌질함' 앞에서 '왜 그렇게들 살고 있느냐'며 껄껄 웃는 인물이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만 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해. 공자님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아직도 매일 반항은 하고 있지만 방패는 필요 없어. 모든 걸 포용했으니까!"라는 대사는 1960년대의 저항 정신이 동양적 현자(賢者)의 캐릭터로 승화됐음을 보여 준다.

남자 주인공 해롤드 역에는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역으로 나온 배우 강하늘(25)이 캐스팅됐다. 첫 연극 출연이라 주변의 걱정도 많았지만, 대선배 박정자의 기(氣)에 눌리지 않고 호흡을 맞추는 투지를 보였다. 인터미션 때 일부 관객이 "걔가 장백기였어?"라고 놀랄 만큼 연기 변신에도 성공했다. 모드에게 청혼하는 순간 이미 이별이 예정돼 있음을 깨닫는 장면에선 객석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연출가 양정웅은 몇 차례 국내에 소개됐던 이 작품을 영화를 연상케 하는 다면적인 무대 구성과 자유분방한 영상 활용을 통해 화사한 격조를 갖춘 연극으로 재창조했다. 차이콥스키, 쇼팽, 존 바에즈를 넘나드는 음악 사용도 탁월했다.



▷2월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 시간 120분, (02)692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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