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왕관을 내려놓지 않는 자, 나 자신을 보라

입력 : 2014.12.25 00:33

[리차드 2세]

올해 마지막 셰익스피어 작품… 김수현·오영수·윤정섭 호연

‘리차드 2세’의 김수현(왼쪽)과 윤정섭. /국립극단 제공
왕위에서 쫓겨나 런던탑에 유폐된 군주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듣는다. 그는 박자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내게는 이 나라와 이 시대의 화음을 제대로 맞출 귀는 없었구나. 나 자신의 흐트러진 박자를 들을 귀는 없었어. 박자를 놓치니 시간을 잃는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나를 잃는다." 이것은 권력을 박탈당한 인간이 최후의 순간에 맞이하는 처절한 자기 응시다.

국립극단이 지난주 개막한 연극 '리차드 2세'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인 올해의 '마지막 셰익스피어'다. 희극이나 비극이 아닌 '사극(史劇)'으로 분류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작품은 한국에서 거의 공연된 적 없었다. 하지만 '리차드 2세'는 올해 국내 연극 중 최고 수준의 셰익스피어극(劇)이라 할 만하다.

14세기 영국, 왕명에 의해 왕의 사촌 볼링브루크가 유배를 당하고, 왕은 그 아버지인 숙부 존의 재산을 몰수해 아일랜드 원정의 군자금으로 쓴다. 왕이 원정을 간 사이 볼링브루크는 수도로 진군해 왕위를 빼앗고 헨리 4세로 즉위한다. 한국 공연을 연출한 루마니아 연출가 펠릭스 알렉사는 원작 희곡의 복잡한 부분을 발라낸 뒤 권력을 향해 내달리고 그 허망함을 토로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에 각을 세웠다. 독특하게도 원작에 없는 주인공의 소년 시절 모습을 등장시켜 또 다른 자아(自我)와 대면하게 하는 기법을 썼다.

배우들의 연기도 빼어났다. 주인공을 맡은 김수현은 극 초반 오만하던 군주가 피폐해진 채 "광대 하나가 죽음의 보좌에 앉아 막간극에 불과한 짧은 시간 동안 나라를 주무르고 온갖 영화를 누리지"란 대사를 읊는 장면에서 오묘한 설득력을 보여줬다. 존 역의 오영수는 인생을 달관한 현자(賢者)를, 볼링브루크 역의 윤정섭은 복수심과 욕망의 화신(化身)을 강렬하게 연기했다.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1688-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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