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사회'라는 배 기우는데 왜 그들만 모를까

입력 : 2014.11.25 00:56

사회의 기둥들

무대 전체가 거대한 상자의 형상이다. 그 속에 1870년대 노르웨이 부유층 가정의 거실이 있다. 처음 1~2도 정도 기울어져 있던 상자는 극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경사가 더 심해져 막판엔 10도에 이르는데, 연기하는 배우들이 자칫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은 지경이 된다. 무대미술가 박동우의 설명. "타고 있는 배의 선실(船室)이 기울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탐욕의 탑을 쌓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겹쳐 보이게 했다."

국내 초연작인 연극 '사회의 기둥들'(헨리크 입센 작, 김광보 연출)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끝없는 탐욕에 대한 묘사가 137년 지난 지금 봐도 낡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소도시의 영주이자 선박회사 사주인 주인공 베르니크(박지일)는 철도 부설을 앞두고 몰래 부동산 투기를 벌이고, 과거 자신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는 처남 요한(이석준)의 귀환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헨리크 입센 원작, 김광보 연출 연극 ‘사회의 기둥들’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이기적이고 자기 잇속을 챙긴다. /LG아트센터 제공
헨리크 입센 원작, 김광보 연출 연극 ‘사회의 기둥들’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이기적이고 자기 잇속을 챙긴다. /LG아트센터 제공

마땅히 '사회의 기둥'이 돼야 할 자들의 이면이 음모와 위선으로 점철돼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기둥'이란 정체성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악덕(惡德)의 근거가 된다. "내가 지금 무너지면 이 도시의 풍요로운 미래가 무너지는 거야"란 절규는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노련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도 했지만 16명의 등장인물 중 어느 한 사람 놓치지 않고 생생한 개성이 드러나게 한 김광보의 연출력은 탁월했다. 어린이 한 명을 빼놓고는 모두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캐릭터다. 이들의 충돌과 대립으로 극의 갈등은 가파르게 수위가 높아지는데, 그 정점은 배가 충분히 수리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서도 무리하게 출항시키겠다는 주인공의 결정이다. "침몰?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나 연극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자본주의 체제의 자체 수정(修正) 가능성을 제시하는 놀라운 반전(反轉)을 드러낸다. 종마처럼 질주하던 극의 진행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진리와 자유의 정신이 바로 사회의 기둥"이란 예상치 못한 대사가 나온다. 입센이라는 위대한 극작가의 통찰력은 이런 것이었다.



▷30일까지 LG아트센터, 공연 시간 125분,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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