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공란 초짜 여배우, 주연이 되다

입력 : 2014.11.19 05:43   |   수정 : 2014.11.19 09:59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이지혜]

'드라큘라'서 주목받은 신예
"다시 엠마 역 맡게 됐어요… 이젠 외유내강 보여줘야죠"

이지혜는 “외유내강형의 엠마를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는 뮤지컬배우 이지혜. 2014년 11월 12일 서울 조선일보사 인근. / 김연정 객원기자

"저 여배우가 누구냐?" 지난여름 대작(大作) 뮤지컬 중 하나였던 '드라큘라'에서 여주인공인 미나 역보다 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배우가 루시 역의 이지혜(24)였다. 구혼자 세 명 중 어느 남자를 고를까 고민하는 발랄한 아가씨로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드라큘라에게 물린 뒤로는 슬픔을 끌어안고 무덤가를 배회하는 흡혈귀 역할로 변신해 객석의 심금을 울렸다. 연기와 노래 모두 뛰어났다.

"정말 행운이었다니까요. '최종 합격까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얘기하면 행운이 날아갈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2012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 때 그는 이력서에 쓸 게 없었다. 초등학교 때 충주MBC 어린이합창단원이었고 중앙대 성악과를 졸업했다는 것 말고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뮤지컬이 이렇게 매력적인 장르였구나'라는 걸 깨닫고 오디션을 보게 됐다. 300대1 경쟁률이라 벌벌 떨었는데 1차에서 3차까지 계속 붙었다.

지난해 1월 '지킬 앤 하이드' 공연에서 이지혜는 신데렐라가 됐다. 무대에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초짜'가 여주인공 엠마 역에 캐스팅된 것. "경험이 없어서 자잘한 에피소드도 많았어요." 데뷔 사흘째 되던 날, 엠마가 잔잔한 선율로 지킬을 위로하는 '한때는 꿈에'를 부르기 직전 한 관객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다섯 번 기침을 했다.

객석에선 다들 박장대소했지만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순식간에 캐릭터를 잊어버리고 저 자신으로 돌아온 거예요." 지킬 역의 윤영석이 손을 꼭 잡아줘 간신히 노래를 마쳤지만 대기실에 가선 펑펑 울어버렸다. "제가 모기만 봐도 '으악' 소리지르는 성격인데요, 갑자기 뒷산에서 날아온 박쥐가 무대에 나타나서 빙빙 돈 적도 있어요."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을 꼭 감은 채 이를 악물고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이후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 '오필리어'에서 주연을 맡으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갔다. 지난해 12월 '베르테르'의 롯데 역은 연애 경험이 별로 없어 감정이입을 하느라 고생했고, 지난 5월 '오필리어'에선 검술 연습을 하도 많이 해서 아직도 오른쪽 어깨가 아플 지경이다. "덕분에 이제 칼싸움 나오는 작품이라면 자신이 생겼지만요."

이지혜는 이번 주말 개막하는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다시 엠마 역을 맡는다. 대형 뮤지컬 무대에 주연으로 설 수 있는 20대 여배우는 많지 않다. "데뷔 때가 그저 엠마 역을 흉내 내는 거였다면, 이젠 엠마가 외유내강(外柔內剛) 캐릭터라는 걸 알아요. '내가 지킬보다 더 강해야 그를 지켜줄 테니 그보다 더 슬퍼하면 안 된다'는 걸요." 지킬 역을 맡은 조승우·류정한·박은태 세 배우와도 각각 '맞춤형 호흡'을 구사하고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21일부터 내년 4월 5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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