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13 02:00
[장막 희곡, 배삼식 '먼 데서 오는 여자']
열하일기만보·하얀 앵두 등 국내 대표적인 40대 극작가
연극, 무력하게 느껴지지만 현재 조망하며 미래 발견해
"뜻밖이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예전 극단 '미추'에 있을 때 먼발치에서 뵈었던 차범석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인상이었지만 어딘가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었죠."
제8회 차범석희곡상 장막희곡 부문에 '먼 데서 오는 여자'로 당선된 배삼식(44)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그가 표현한 차범석 선생의 모습처럼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을 이어갔다. 서울대 인류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나온 그는 '열하일기만보' '벽 속의 요정' '하얀 앵두' 등의 작품을 쓴 국내 대표적 40대 극작가다.

대학 졸업 이후 뒤늦게 연극의 길을 걸을 때 감탄하면서 읽었던 작품이 차범석 선생의 희곡 '산불'이었다. "소백산 산자락에서 수런거리던 차 선생의 소리를, 다음 세대인 제가 도시의 뒷골목에서 수런거리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수시로 꺼내 읽는다는 차범석 선생의 말이 적혀 있었다. '작가는 일시적인 현상·유행을 타고 가는 뱃놀이꾼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면에서 세상을 보고 인생을 관조하는 예언자이자 증인이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특별한 장식이나 기교 없이 대화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2인극이다. 공원 벤치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녀가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여자는 남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래전 중동으로 일을 하러 떠났던 남편에 대해 말한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부부다. 하지만 병든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6·25 전쟁, 부잣집 식모살이, 청계천 봉제공장, 서독 간호사의 꿈…. 아내가 곱씹는 과거의 기억은 한국 현대사의 구체적인 시공간과 겹쳐진다. 그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그들의 딸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거기서부터 아내의 기억은 멈춘다.
"갈수록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삶의 이런 남루함에도 필시 이유와 근원이 배태된 자리가 있겠지요." 작품은 그것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결국 사람들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기억과 망각을 주제로 한 겁니다."
배삼식은 "연극이란 게 결국 사후의 이야기여서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눈 밝은 사람들은 현재를 조망하고 미래를 발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젠 한목에 세상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호기 같은 건 접고, 구체적인 삶과 기억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써 나갈 겁니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특별한 장식이나 기교 없이 대화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2인극이다. 공원 벤치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녀가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여자는 남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래전 중동으로 일을 하러 떠났던 남편에 대해 말한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부부다. 하지만 병든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6·25 전쟁, 부잣집 식모살이, 청계천 봉제공장, 서독 간호사의 꿈…. 아내가 곱씹는 과거의 기억은 한국 현대사의 구체적인 시공간과 겹쳐진다. 그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그들의 딸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거기서부터 아내의 기억은 멈춘다.
"갈수록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삶의 이런 남루함에도 필시 이유와 근원이 배태된 자리가 있겠지요." 작품은 그것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결국 사람들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기억과 망각을 주제로 한 겁니다."
배삼식은 "연극이란 게 결국 사후의 이야기여서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눈 밝은 사람들은 현재를 조망하고 미래를 발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젠 한목에 세상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호기 같은 건 접고, 구체적인 삶과 기억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써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