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회의 기둥들' 연출가 김광보]
19일 입센의 숨겨진 희곡, 무대로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작품
지나친 욕망은 파멸을 가져온다… 어느 시공간이든 이 본질은 같아"
"나는 우리 회사와 지역사회의 발전에 대한 책임이 있어!"(선주 베르니크)
"저도 발전을 원합니다. … 과학과 자본이 새로운 발명품들을 만들어 내면, 그걸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작업반장 아우네)
"자넨 생각이 너무 많아."(베르니크)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지하 연습실, 배우들이 연습하는 신작 연극의 대사에선 초기 자본주의 시절의 사회 발전에 대한 묵직한 논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연극 '사회의 기둥들(The Pillars of Society)'.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이번 연극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다.
"너무 진지하잖아요…." "대미지(피해) 느낌이 약하다니까요." 수시로 대사를 멈추게 하고 연기 지도를 하는 사람은 중견 연출가 김광보(50). 첫 연출작인 1994년 '지상으로부터 20미터' 이후 이번이 82번째로 무대에 올리는 연출작이다.
"처음엔 입센의 '인형의 집'을 연출해 보려고 하다가 이 작품을 알게 됐어요." 1877년 발표된 이 희곡은 당시로서는 막대한 분량인 1만 부가 발행됐던 작품이다. "이게 정말 137년 전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현대적이어서 놀랐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춰 보더라도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목 '사회의 기둥들'이란 '마땅히 사회의 기둥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대자본을 지닌 거부(巨富)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선박 회사를 운영하는 주인공 베르니크는 철도 부설권과 부동산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면서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는다. 베르니크는 자신의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는 처남을 자기 배에 태워 떠나보내려 한다. "놀라운 건, 그 배가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무리하게 출항시키려 한다는 겁니다." 이 작품의 공연이 결정된 것은 세월호 참사 전인 지난 3월이다.
배우 16명이 등장하는 이 연극은 1100석 규모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공간이 넓어 동선도 신경 써야 하지만 배우들의 발성(發聲)도 커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다행히 박지일·정재은·우현주·유연수 등 연극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 "뛰어난 배우가 많이 나와서 연출하는 처지에선 정말 좋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는 게 많거든요. "
그는 올해 들어서만 연극 일곱 편을 연출했는데, '세계일주 연출'이란 말을 들을 만큼 모두 배경이 다르다. 미국(스테디 레인), 중국(M 버터플라이), 영국(은밀한 기쁨), 고대 로마(줄리어스 시저), 폴란드(중독), 한국(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에 이어 이번엔 노르웨이다. 그는 "어느 시공간이든지 지나친 욕망이 파멸을 가져온다는 인간성의 본질은 같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도 바빠 보여서인지 내년 스케줄은 아직도 텅 비어 있습니다. 이것 참 큰일인데…."
▷연극 '사회의 기둥들' 19~30일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