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불륜은 불륜을 낳고… 소극장은 名品 연극을 낳고

입력 : 2014.10.24 00:46

고르곤

20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젊은 여자가 러브호텔에 불을 질러 내연남을 살해한다. 세월이 흘러 죽은 남자의 딸은 직장 상사인 유부남과 불륜관계에 빠진다.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연극 '고르곤'(가네시다 다쓰오 원작, 임세륜 연출·사진)은 흔한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단하고 치밀한 치정극'이다. 1993년 일본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번안한 이 작품은, 공연 시간 95분 내내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긴박감으로 채워져 있다.

/극단 다 제공
/극단 다 제공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차츰 종횡으로 연결되고, 20년의 시차를 둔 아버지의 불륜과 딸의 불륜이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가족관계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뒤틀린 욕망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다. A와 B가 대화하는 도중 갑자기 다른 시간대의 C가 끼어들어 극을 이어가고, 대사와 방백(傍白)의 경계는 일찌감치 무너져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달된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 신화의 고르곤(메두사)처럼 비극적인 운명의 힘 속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과거 그냥 덮어버렸던 정신적 상처가 세월이 흘러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또 다른 비극을 낳는 과정의 세밀화이기도 하다. 연극에서 남자들은 한결같이 무책임하고 비겁한 반면, 위선 속에서나마 가족을 복원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여자들이다. 그러나 욕망이 이성적으로 제어되거나 인간관계의 본질이 바뀌기란 쉽지 않다. "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대로만 살아가는 걸까요?" "다른 걸 모르기 때문이겠지요"라는 쓸쓸한 대사가 그것을 짚어낸다.

스타 배우 한 사람 나오지 않고 극장도 대학로 중심가에서 떨어진 주택가에 있지만, 좁은 무대 위에서 간단없이 이어지는 배우 여덟 명의 숨 가쁜 리액션이 연습의 강도와 열정을 짐작케 했다. 오랜만에 접하는 대학로 소극장 연극의 진미(珍味)다.


▷26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02) 76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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