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대도 밴드도 완벽… 서태지만 긴장했네

입력 : 2014.10.20 03:01

[서태지 컴백 콘서트]

5년 만에 활동 재개… 창법 달라져, 음정 놓치고 가사 전달도 잘 안돼
무대 연출 직접 지휘하는 등 '완벽주의자' 모습은 그대로

아무리 생각해도 서태지는 좀 더 자주 나와야 했다. 5년 만의 활동 재개를 위해 지난 한 달간 밴드 멤버들과 매일 연습했음에도, 그는 무대 위에서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했다. 10억원을 훌쩍 넘겨 만든 무대와 최첨단 음향은 국내 어떤 공연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다. 서태지밴드 연주 역시 국내 최정상급이었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팬들에겐 '감격의 밤'이었겠지만, 완벽주의자 서태지로서는 못내 아쉬운 점이 많았을 무대였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서태지 컴백 무대가 열렸다. 오후 6시 시작 예정이었으나 6시 30분에 댄스팀이 올라와 10분간 공연했고, 오후 7시에 서태지가 등장했다. 애초 6시부터 1시간가량 댄스를 비롯한 오프닝 공연을 계획했으나 대거 취소되면서 50분간 공백이 생겼다. 관객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서태지는 지난 5년간 1년은 쉬고 1년은 새 앨범 구상을 했으며, 2년 반 동안 녹음과 후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과작(寡作)의 길로 들어선 그는 라이브 스케일과 세공(細工)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다. 이번 컴백 무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서태지는 지난 5년간 1년은 쉬고 1년은 새 앨범 구상을 했으며, 2년 반 동안 녹음과 후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과작(寡作)의 길로 들어선 그는 라이브 스케일과 세공(細工)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다. 이번 컴백 무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서태지 홀로 늙지 않았다. 10대 때부터 서태지를 따라다녔고 그의 집 담벼락에 애정을 표현했던 여학생들은 모두 30대를 넘겼다. 지난 2000년 서태지가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와 똑같이 머리를 빨강으로 염색하고 집단 헤드뱅잉을 했던 20대들은, 이제 함부로 반말하기 어려운 나이가 됐다. 서태지는 여전히 동화 같은 노래들과 사슴 썰매가 하늘을 나는 연출을 준비했다.

지난 2008년 앨범 수록곡 '모아이'를 발라드로 편곡해 부르며 서태지가 등장했다. 이어 이미 공개된 노래 '소격동'을 아이유와 함께 부르면서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이유는 노래 고음에서 음반처럼 절제하지 못하고 질러버렸다. 키(key)를 아이유에게 맞춘 서태지는 한 옥타브 낮게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긴장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처럼 들렸다.

역시 이미 공개된 노래 '크리스말로윈'에서 서태지는 새 앨범의 장르를 분명히 드러냈다. 새 멤버 덕스킴의 키보드와 신서사이저가 맨 앞에서 쉴 새 없이 귀를 공략하면, 리듬을 잘고 복잡하게 쪼갠 최현진의 드럼과 강준형의 베이스가 그 뒤에서 포격하듯 사운드를 지원했다. 이 노래와 그다음 곡 '버뮤다 트라이앵글'의 후렴구에서는 서태지 보컬이 밴드에 묻혀버릴 만큼 사운드가 강렬했다. 야외 공연장 특성상 낮은 볼륨으로 리허설을 하다가 실전 믹싱에서 실수가 생긴 듯했다.

'숲속의 파이터' '잃어버린' '프리즌 브레이크' 등 신곡 3곡이 연달아 연주될 때, 관객들은 낯선 노래에 당황했다. 세 곡 모두 신스팝(Synth Pop)과 일렉트로닉 록 사이의 신나는 사운드였지만, 처음 듣는 곡인 데다가 서태지 보컬이 한층 장식적으로 바뀌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프리즌…'을 부를 때 서태지는 끝내 음을 놓치고 플랫(♭)된 멜로디를 이어갔다.

"나의 일천열 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요?" 같은 서태지의 말에 그게 '숲속의 파이터' 가사란 걸 몰랐던 관객들은 썰렁한 반응을 보였다. 함께 얼어붙은 서태지는 급기야 '나인티스 아이콘(90s' Icon)'을 부르기 직전 "90년대 한물간 가수들과 함께 여러분의 인생도 저물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30대 팬들에겐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을 하고 말았다.

서태지는 '인터넷 전쟁' '해피 엔드' '컴백홈' 같은 히트곡을 연달아 부르며 예전의 기량을 회복했다. 래퍼 두 명과 함께 빨간 깃발을 휘두르며 '교실이데아'를 부를 때는 6년 전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헤비메탈 베이시스트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여전히 낮은 음압(音壓)에도 포효하듯 노래할 때 가장 어울렸다. 새 음반에서 음을 하나하나 찍어누르듯 부르거나 낯선 비브라토를 구사한 그에게 적응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날의 생소한 긴장은 아마 지난 5년간 그가 겪은 여러 가지 일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음악과 조명과 특수효과를 초 단위로 직접 프로그래밍하며 완벽한 무대에 대한 집념을 보여줬다. 그것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므로, 이 42세 뮤지션의 라이브는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는 연말부터 전국 투어를 할 예정이다. 그때쯤엔 우리가 알던 서태지가 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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