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천년을 초월한 텍스트, 세명이 썼다고?

입력 : 2014.10.09 23:21

'삼국유사 연극만발' 시리즈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역사와 판타지, 기록과 상상력의 총화(總和)이자 정수(精髓)로 '삼국유사'만 한 텍스트가 있을까. 국립극단은 2012년부터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고, 지난달 시작된 '삼국유사 연극만발' 시리즈는 모두 다섯 편의 작품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달 공연된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김민정 작, 박혜선 연출)과 '남산에서 길을 잃다'(백하룡 작, 김한내 연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전자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뻔한 은유와 너무 잦은 액션 신이 하품을 유발했고, 후자는 '삼국유사'와 별 관련 없는 작품을 대사만 몇 마디 바꿔 놓은 것처럼 보였다.

'삼국유사 연극만발'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유사유감'. '삼국유사'의 저자를 복수로 설정했다. /국립극단 제공
'삼국유사 연극만발'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유사유감'. '삼국유사'의 저자를 복수로 설정했다. /국립극단 제공
현재 공연 중인 '무극(無極)의 삶'(김태형 작, 김낙형 연출)과 '유사유감'(遺事遺憾·박춘근 작, 박해성 연출)은 모두 '삼국유사'라는 텍스트 자체가 만들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복수의 필자가 그것을 집필했다는 상상력의 산물이어서 흥미롭다.

'무극의 삶'은 '삼국유사'에 두 군데 흔적을 남긴 무극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진짜 역사는 힘있는 자들의 기록이 아니라 백성들의 기억"이라는 주제 의식은 강렬했고, 주연 윤정섭의 열연은 숨소리도 멈추게 했다. 하지만 충렬왕과 원성공주가 집필실을 방문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섞은 이 연극은 어떻게든 '삼국유사'를 반체제적인 텍스트로 보려는 강박관념을 드러내면서도, 정작 책의 실제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유사유감'이었다. 저자 일연의 다른 이름인 '견명'과 '회연'이 각각 별개의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시작된 이 연극은 '삼국유사' 텍스트 내에서 서로 충돌하는 시각들을 보여준다. "진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듣고 싶은 걸 듣는 것" 같은 대사는 역사 서술의 '사실'과 '기록' 사이 괴리를 탁월하게 짚어낸다. '삼국유사'는 불타버린 황룡사 구층탑을 대신해서 언어로 쌓은 탑이며, 글을 쓰는 일이란 결국 불타지 않는 탑을 쌓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삼국유사 연극만발'의 전적은 1승 1무 2패인 셈. 이제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28일 개막) 한 편이 남았다.


▷'무극의 삶' 12일까지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유사유감' 19일까지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1688-5966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