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음악 페스티벌 '슈퍼소닉 2014'가 열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영국 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메이를 흥분시킨 것은 한국 관객 1만5000명의 '떼창(노래를 다 함께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떼창은 무리를 일컫는 우리말 '떼'와 노래한다는 뜻의 한자어 '창(唱)'을 더한 말로 사전에는 없는 신조어다.
'록의 전설'이라는 퀸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뷔 41년 만이다. 이날 공연을 다녀온 직장인 이지원(여·26)씨는 "특히 히트곡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를 부를 땐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떼창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메이도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해외 뮤지션, 한국 떼창에 반하다
국내외 음악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그래서 '레전드(legend·전설) 떼창'이라고 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 2006년 미국 록밴드 메탈리카의 내한 공연이 그랬다. '마스터 오브 퍼핏츠(Master of puppets)'의 기타 솔로 부분이 시작되자 관중이 일제히 '우워어어 워어어' 하며 기타 연주를 따라 했다. 메탈리카는 공연 직후 한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들은 기타 솔로 부분까지 입으로 연주했다. 정말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악동 짓 잘하기로 유명한 미국 힙합 가수 에미넴도 한국 관객의 떼창에는 마음을 뺏겼다. 그는 2012년 내한 공연 때 관객들이 일제히 자기 노래를 함께 불러주자 감격한 나머지 두 팔을 벌려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평소 신랄한 사회 비판은 물론 욕설도 서슴지 않는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트가 아니라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버리겠다는 경고 아니냐' '새로 나온 욕일 수 있다' 등의 웃지 못할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 록밴드 머룬파이브도 한국 관객의 떼창에 열광한다. 지금까지 공연한 나라 중 한국을 최고로 꼽을 정도다. 머룬파이브는 2008년 첫 내한 공연 때 한국 관객들이 자신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감명받아 2011년 다시 왔을 땐 관객을 두 팀으로 나눠 '돌림노래로 불러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외에 뮤즈, 미카, 브루노 마스, 비욘세, 오아시스, 트레비스 등도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 반응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유럽 어느 도시를 가도 이런 반응은 나올 수 없다" "무대에서 소리 내며 운 건 한국 공연이 처음"이라고 했다.

◇비결은 '성실한 준비'
뮤지션들도 반하게 만드는 열정적 청중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해외 뮤지션 공연을 자주 찾는 이들은 "떼창은 성실한 준비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국내 주요 록 페스티벌을 즐겨 찾는 직장인 김소영(여·27)씨는 "해외 뮤지션의 국내 공식 팬 카페엔 내한 공연 한참 전부터 세트 리스트(뮤지션이 공연에서 연주하는 곡 목록)와 함께 '떼창 준비에 돌입했다'는 글들이 올라온다"며 "가사를 열심히 외워 가야 재밌게 놀 수 있다"고 했다.
한국 관객들은 '종이비행기 날리기' '금가루 뿌리기' 등 뮤지션을 위한 대형 이벤트도 준비한다. 김씨는 "영국 록밴드 트레비스는 공연 때마다 관객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이벤트를 해주는데, 공연 전부터 공식 팬 카페엔 가사와 함께 '이 부분과 이 부분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된다'는 글이 올라와 '함께 숙지해가자'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했다.
손뼉도 그냥 치는 게 아니다. 이번 퀸의 공연을 관람한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전공의 김재윤(26)씨는 "공연에 오기 전 '라디오 가가(Radio gaga)'와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에서 할 '가가 박수'와 '쿵쿵짝 박수'를 연습했다"며 "손뼉 치는 법은 영상으로 제작돼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는데, 관객 대부분이 이를 보고 연습해왔는지 공연장에서 박수 소리가 엄청났다"고 했다.
◇우리는 왜 '떼창의 민족'이 됐나
떼창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관객들 역시 공연장에서 노래 주요 부분을 따라 부른다. 그러나 비영어권인 나라에서 '전곡(全曲) 떼창'을 하고, 심지어 기타 연주까지 허밍으로 따라 하는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떼창의 민족'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관객들은 한국 관객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박수는 주로 곡과 곡 사이에 하고, 노래가 시작되면 야광봉만 조용히 흔드는 등 얌전하기로 유명하다. 2012년 내한에 앞서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서 공연한 에미넴은 일본 관객의 썰렁한 반응을 참지 못하고 "제발 너희를 위해서라도 소리를 지르라"고 했다.
한국 관객들의 떼창은 왜 이리 열정적일까. 대중음악 평론가 차우진씨는 "외국 팬들이 스타와 소통하는 방식과 한국팬들이 스타와 소통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치밀하게 계획된 떼창, 스타를 위한 이벤트 등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측면이 있다"며 "여기엔 1990년대 이후 숱한 대형 콘서트에 이런 방식으로 참가해 온 아이돌 팬덤(fandom)의 집단적 경험이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고 했다.
해외 뮤지션들은 한국 관객의 떼창에 감탄하거나 눈물을 흘리고, 해외 팬들은 한국이 '놀 줄 아는 나라'라며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이 소식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인터넷상으로 순식간에 공유된다. 문화 평론가 하재근씨는 "이 과정을 통해 어느새 떼창은 집단적 자부심이 됐다"며 "한국 관객들이 떼창에 더욱 열을 올리는 이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