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25 03:03
| 수정 : 2014.08.25 03:48
[임영웅 연출 60년 기념작 '가을소나타']
배우들의 미세한 몸짓만으로 심리적 대립의 긴장감 보여줘
손숙·서은경 연기 호흡도 완벽
"난 엄마가 조종하는 영혼 없고 못생긴 꼭두각시 인형이었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말을 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게 됐죠."(에바)
"엄마라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안했지. 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샬롯)
대가(大家)의 솜씨였다. 지난 22일 개막한 연극 '가을 소나타'(잉마르 베리만 원작, 임영웅 연출)는 한마디로 '심리의 블록버스터'다. '연출 60년 기념작'인 이 작품에서, 연출가 임영웅은 갈등을 서서히 고조시켜 절정에 이르는 과정을 세밀하고 세련되게 이끌어 나간다. 마침내 감정이 폭발해 딸이 "엄마와 딸, 정말 끔찍한 조합이에요! 모든 게 사랑과 걱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죠"란 대사를 소리 지를 무렵, 객석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1978년 영화를 연극 무대로 옮겼다. 유명 피아니스트인 엄마 샬롯(손숙)은 7년 만에 딸 에바(서은경)와 재회한다. 그러나 발작 장애를 지닌 둘째딸 엘레나가 에바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고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돌연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풀죽은 딸이 엄마 앞에서 쇼팽의 '전주곡'을 치고, 엄마가 경멸과 조소가 깃든 표정으로 그걸 듣는 장면은 이미 무언(無言)의 전초전이다. 딸이 달려드는 악몽을 꾼 엄마가 1층으로 내려오고, 엄마와 마주친 딸이 내면 깊은 곳에 감추고 있던 상처를 하나 둘 꺼내면서, 새벽에 그들이 마주 앉은 거실은 전쟁터로 돌변한다.
베리만의 영화가 얼굴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을 자주 써서 인물의 심리를 드러냈다면, 임영웅의 연극은 무대 위 배우의 미세한 몸짓과 상호 반응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때론 절규하고 흐느끼는 대사 사이의 작은 침묵에서도 고통스러운 기(氣)가 느껴졌다. 배우들의 호흡도 퍼즐처럼 맞았다. 원작 영화에는 엄마가 임신한 어린 딸을 강제로 낙태시켰다는 사실을 사위가 듣고 놀라는 장면이 있었으나, 이걸 삭제한 것이 오히려 집중도를 높인다.
"엄마라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안했지. 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샬롯)
대가(大家)의 솜씨였다. 지난 22일 개막한 연극 '가을 소나타'(잉마르 베리만 원작, 임영웅 연출)는 한마디로 '심리의 블록버스터'다. '연출 60년 기념작'인 이 작품에서, 연출가 임영웅은 갈등을 서서히 고조시켜 절정에 이르는 과정을 세밀하고 세련되게 이끌어 나간다. 마침내 감정이 폭발해 딸이 "엄마와 딸, 정말 끔찍한 조합이에요! 모든 게 사랑과 걱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죠"란 대사를 소리 지를 무렵, 객석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1978년 영화를 연극 무대로 옮겼다. 유명 피아니스트인 엄마 샬롯(손숙)은 7년 만에 딸 에바(서은경)와 재회한다. 그러나 발작 장애를 지닌 둘째딸 엘레나가 에바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고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돌연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풀죽은 딸이 엄마 앞에서 쇼팽의 '전주곡'을 치고, 엄마가 경멸과 조소가 깃든 표정으로 그걸 듣는 장면은 이미 무언(無言)의 전초전이다. 딸이 달려드는 악몽을 꾼 엄마가 1층으로 내려오고, 엄마와 마주친 딸이 내면 깊은 곳에 감추고 있던 상처를 하나 둘 꺼내면서, 새벽에 그들이 마주 앉은 거실은 전쟁터로 돌변한다.
베리만의 영화가 얼굴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을 자주 써서 인물의 심리를 드러냈다면, 임영웅의 연극은 무대 위 배우의 미세한 몸짓과 상호 반응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때론 절규하고 흐느끼는 대사 사이의 작은 침묵에서도 고통스러운 기(氣)가 느껴졌다. 배우들의 호흡도 퍼즐처럼 맞았다. 원작 영화에는 엄마가 임신한 어린 딸을 강제로 낙태시켰다는 사실을 사위가 듣고 놀라는 장면이 있었으나, 이걸 삭제한 것이 오히려 집중도를 높인다.
손숙은 끊임없이 가족으로부터 도피해 자신만의 세계에 숨으려는 비정한 엄마 역할을 소름끼치게 연기했다. 그의 표정에는 늙고 지친 도도함과 성마름이 담겨 있었으나, 잠시나마 딸을 보듬고 가책을 느끼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발랄한 며느리 역할을 맡았던 서은경은 이 작품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분노를 조용히 삭이기만 하던 딸은, 후반부에서 엄마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를 모두 쏟아내며 순식간에 화염처럼 타오른다.
사위 빅토르 역의 한명구는 에바가 편지를 읽으며 "여기는 어느새 가을이 왔어요"라고 말할 때 쓸쓸함과 회한이 어린 표정으로 웃는다. 국내 무대 미술의 일인자 박동우는 2층 구조의 무대 뒤편에 가을의 스산함을 표현했다. 이미 감정의 상처가 너무 많이 쌓인 모녀의 대화 자체가 늦었다는 암시다. 하지만 연극은 이런 상황에서도 '화해'를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딸은 엄마에게 용서를 빌며 속삭인다. "너무 늦게 알게 됐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을래요. 다신 엄마를 떠나 보내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엄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9월 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 100분, 1544-1555
사위 빅토르 역의 한명구는 에바가 편지를 읽으며 "여기는 어느새 가을이 왔어요"라고 말할 때 쓸쓸함과 회한이 어린 표정으로 웃는다. 국내 무대 미술의 일인자 박동우는 2층 구조의 무대 뒤편에 가을의 스산함을 표현했다. 이미 감정의 상처가 너무 많이 쌓인 모녀의 대화 자체가 늦었다는 암시다. 하지만 연극은 이런 상황에서도 '화해'를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딸은 엄마에게 용서를 빌며 속삭인다. "너무 늦게 알게 됐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을래요. 다신 엄마를 떠나 보내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엄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9월 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 100분,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