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의 즐거운 인생

입력 : 2014.09.08 13:48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사나요?” 박칼린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고 살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했거든요.” 박칼린의 대답은 늘 똑같다.


여러분께 장담하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단 하루도 일을 안 하고 살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에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더 연습을 해도 그건 일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당신은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를 얻느냐”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서 얻어요. 음악과 무대 이외에도 저에게 즐거운 인생을 주는 요소는 정말 많거든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딸 셋 중 막내였던 저는 음악실에 틀어박혀 살던 공부벌레였어요. 인기가 많았던 언니들은 데이트도 하고 파티에도 참석했지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저는 아침 6시부터 저녁까지 혼자 집에서 첼로만 켜는 일이 많았지요. 외출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첼로만 켰어요. 그 시간이 힘들진 않았어요.


일요일에는 무조건 빵을 구웠어요. 설거지도 좋고, 따뜻한 케이크 빵틀도 좋고 향기도 좋았어요. 내 눈앞에서 빵이 부풀고 완성돼 탄생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만든 빵은 친구들에게 나눠주는데, 이 취미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배우들에게 케이크 선물하기를 좋아합니다.


몽상가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호기심과 꿈이 많은 아이였어요. 음악을 전공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했지만, 마음 한쪽으로는 우주여행을 하고 싶었고 외계인을 만나보고도 싶었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 꿈도 있었어요. 슈퍼맨처럼 나는 그런 엉뚱한 꿈은 아니었고 파일럿이 되고 싶었어요. ‘꿈은 이루어진다’는 진리는 제 인생에도 적용이 됐는데, 실제로 우주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우고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기도 했어요.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공식들 때문이에요. 거꾸로 봐도, 옆으로 봐도 일본어나 아랍어 같았던 공식들에 깜짝 놀랐죠.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지만, 호기심 소녀의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았어요. 말 타는 것을 좋아해서 LA 근처에서 소몰이를 한 적도 있어요. 일 년에 한 번 산에 가서 소몰이를 하는 거예요. 아마 제가 미국에서 살았으면 카우보이가 됐을 것 같아요. 동물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좋았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제가 손발이 커서 수영을 좋아하고, 또 곧잘 해요. 한땐 진지하게 올림픽 출전해서 메달을 따는 꿈을 꾼 적도 있어요. 동네 경기라도 있으면 꼭 참가하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몇 년 전에는 스포츠 댄스를 섭렵하기도 했어요. 키가 너무 커서 좌절했지만, 탱고는 언젠가는 꼭 도전하고 싶은 장르입니다.


아, 어릴 때 쿵푸를 한 경험도 있어요. 두 달 정도 재미있게 배웠는데, 손가락으로 벽 치기를 해야 해서 관뒀어요. 어릴 때 배구를 하다가 첼로 선생님께 들켜서 혼난 적이 있거든요. 음악은 손가락이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최근에 중국 무술에 다시 관심이 생겼어요. 중국 무당산이라는 곳에 고수들이 있다고 하는데, 환상적인 무술을 선보이는 무당파에 꽂혀서 진지하게 유학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뭐 해요?


그냥 태어나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 재미있고 궁금해요. 어떤 사람의 생각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재미있고, 색깔이 궁금하고, 인생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요. ‘안 하고 있으면 뭐하나, 시간낭비다’라는 DNA가 제 몸에는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절 두고 열정적으로 산다,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하시는데 저는 태어난 것 자체가 좋아요. 다양한 문화, 나라, 종교 등등 알고 싶은 것이 정말 많거든요. 모든 궁금증을 받아들여서 한바탕 재미있게 하고 가고 싶다는 생각만 단순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왕 태어났으니 즐겁게 살아가자’가 좋은 것 같아요. 살아 있는 동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움직이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더 살피기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잖아요. 살아 있다는 게 행복하고, 태어난 것 자체가 참 좋은 일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시간낭비잖아요. 열심히 살아야죠.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분들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호소하고, 본인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탓하기도 하시지만, 그런 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 같아요. 저 역시 순간순간 힘들 때도 많지만,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호기심을 가지면 또 달라져요.

제가 평소에 자주 하는 생각 중에 ‘50억 년 후에는 태양계가 없어진다’는 게 있어요. 그렇게 거창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아침저녁 출근길, 빡빡한 교통 체증, 많은 인파 등 순간순간 힘들 때도 많지만, 그 시간을 재미있는 일과 생각으로 채워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혼자 길을 걷거나 운전하는 시간을 굉장히 즐겨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거든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 비난하고 토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이런 성격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 질문을 많이 해서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 적도 있을 정도죠. 호기심 때문에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인생이 즐거워요. 늘 무언가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끊임없는 열정은 모든 것이 궁금한 제 성격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퍼즐을 정말 좋아하고, 무언가를 푸는 것을 좋아해요. 목걸이가 엉키면 사람들은 풀기 힘들어하는데, 저는 그걸 얼마나 빨리 풀 수 있을까 생각하고 도전하는 재미를 즐겨요. 퍼즐이 다 풀리면 인생이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쉬운 것보다 어려운 숙제 풀기를 더 좋아하고 재미있어합니다. 모든 것이 궁금하고 끝이 보고 싶어요. 제가 저에게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면 이 궁금함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길을 잃었을 때는…


저는 지도를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저희 집에는 늘 지구본이 있었어요. 화장실 벽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매달 업데이트되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고요. 지도를 보고 생각하는 걸 좋아해서 운전할 때도 내비게이션은 쓰지 않아요. 동서남북은 태양을 보고 가늠하는 식이에요. 그 덕분에 저는 뭐든지 직접 생각하고 찾아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됐어요. 길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도 없어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결국 답이 나오거든요.


살다 보면 물리적으로 길을 잃을 때가 있고 심리적으로 기로에 설 때가 있는데, 지도를 보면서 지리를 찾을 때랑 똑같아요. 지도를 본다는 것은 이 커다란 지구, 대륙, 도시 어디쯤에 내가 놓여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거잖아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거든요. 배우들이 거울 보기를 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꼭 주문하는 과정이 있는데, 거울을 가져다놓고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나의 본성을 아는 것이 연기보다 우선하기 때문이에요. 과연 내가 누구일까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은 배우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에요.


저도 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자 길을 잃지 않는 노하우이기도 해요.


길을 잃는 것도 때로는 재미있어요. 나쁨 속에도 좋은 요소는 꼭 있어요. 저는 슬럼프에 빠지면 3일 동안 문 닫고 집에만 있어요. 완전히 밑바닥까지 쳤다가 커튼을 열고 청소를 하면서 정리를 해요. 그러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두려움도 없어져요. 모든 것의 끝이 보고 싶은 성격은 길을 잃었을 때도 빛을 발한답니다.



※ 본 기사는 서울시 홍보대사인 박칼린 음악감독이 지난 7월 8일 저녁 서울시청 시민청 내 활짝라운지에서 ‘내 인생을 지휘하는 법’을 주제로 한 특강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정리 임언영 기자 | 사진 신승희,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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