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피폐해진 지식인 이야기… 연기는 힘이 넘치네

입력 : 2014.07.18 01:02

안톤 체호프의 '이바노프'

"20대 때 우리 모두는 영웅이었고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됐었지. 그런데 30대가 되자 녹초가 돼 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왜지?"

주인공 이바노프 역할을 맡은 배우 남성진에게서 이토록 진지한 연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위악(僞惡)과 짜증, 조소와 성마름, 자신에 대한 경멸과 연민이 뒤섞인 감정이 선 굵은 발성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한때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였으나 이제는 피폐해진 인텔리겐치아의 쓸쓸함.

/극단 체 제공
/극단 체 제공

'셰익스피어 다음은 체호프'라고 할 만큼, 올해 서거 110주년을 맞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연극 여러 편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고 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작 위주다.

이 중 권성덕·장보규·이주실 등 연기력으로 무장한 중견 배우들의 포진이 돋보이는 작품이 국내 초연작인 '이바노프'<사진>다. 공연 전 연습실 근처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배우들은 "젊은 애들이 체호프 하기 힘들 텐데…"라며 오히려 다른 작품을 걱정했다. 과연 이들의 연기는 오랜만에 보는 정극 연기의 향연이었다. 특히 샤벨스키 백작 역의 권성덕은 천진난만한 듯하면서도 세상사에 능수능란한 몰락 귀족 역할로 극에 힘을 실었다.

평자들은 체호프 연극이 지금 호소력을 갖는 이유를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 "한때 잘나가던 지식인이 생활전선에서 '찌질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동질감" 등으로 본다. 러시아 유학파인 연출가 강태식은 바로 이 점을 효과적으로 짚었다. 빚을 지고, 병든 아내 뒤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정말 지긋지긋해" "삶의 의욕을 잃었어"라며 투덜거리는 주인공은, 전통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일상적인 무기력감에 빠진 현대인의 병적인 모습과 정확히 겹쳤다.


▷2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 140분, (02)744-7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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