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얼굴 대신 공포와 마주한 70분

입력 : 2014.06.27 00:51

[暗轉극 '어둠 속에서' 봤더니]
무대와 객석 모두 완벽한 어둠 속 목소리·음향효과만으로 연출

맨 앞줄에 쭈그리듯 앉았더니 무대 턱이 발끝에 닿는다. 무대 폭은 5m가 될까 말까 한 협소한 지하 극장이다. 불이 완전히 꺼진다. 암전(暗轉)은 극이 끝날 때까지 70분 동안 계속된다. 시작 5분 만에 극 중 인물이 지닌 휴대전화 불빛이 딱 한 번 잠시 희미하게 켜졌다 꺼질 뿐이다.

극단 푸른달이 지난 14일 개막한 연극 '어둠 속에서'(박진신 작·연출)는 한국 연극사에 전례 드문 '암전극'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남녀 배우 2명의 목소리와 음향효과만 들리면서 극이 진행된다. 극장 입구엔 '휴대전화 불빛이 보이면 연극이 중단되니 꼭 꺼주세요' '야광 제품은 가방 속에 넣어 주세요'라고 쓰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암전극 ‘어둠 속에서’의 출연 배우 임우영(왼쪽)과 이재원. 연극에선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극단 푸른달 제공
암전극 ‘어둠 속에서’의 출연 배우 임우영(왼쪽)과 이재원. 연극에선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극단 푸른달 제공

"아저씨… 거기 있어요?" 무대 왼쪽에선 여고생, 오른쪽에선 30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들은 10여일 전 무너진 건물 더미에 파묻혀 부상당한 채 여전히 생존해 있다. 어디서도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무대와 객석 모두 캄캄하다. 극 시작 3분쯤 지나자 청각이 평소와는 달리 대단히 민감해진 것이 느껴졌다.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와 훌쩍이는 소리에 담긴 고통과 공포가 금세 전이(轉移)됐다. 마치 관객 자신도 사고 현장에 묻힌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차라리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배우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간간이 갑작스러운 비명이나 건물이 무너지는 음향효과가 들릴 때마다 객석에서도 비명이 뒤따랐다. 소극장 내부가 좁고 무더워 고통이 배가됐다. 지옥 같은 공간에서 솟아나는 것은 오히려 삶의 의지다. 극중 여고생은 "아빠 엄마한테 미안해요…. 여기서 나가면 꼭 콜라를 마시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체념한 듯 투덜대던 남성은 절정의 순간 "너 아무것도 못 해봤잖아, 살아 있으란 말이야"라고 울부짖는다.

극이 끝날 무렵 불이 켜지자 그제야 온몸이 땀으로 젖은 배우들의 얼굴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와 밖으로 나서니 사물이 보이는 세상에서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대단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 체험해볼 만한 독특한 관극(觀劇)이었지만, 결코 두 번 겪고 싶지는 않았다. 심약자라면 한 번도 무리일 것 같다.


▷7월 10일까지 대학로 푸른달극장, 070-4196-7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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