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레 개조할 이 破格의 눈빛

입력 : 2014.06.24 02:59

-국립발레단 초빙 안무가 볼피
강수진 단장 권유로 보름 넘게 투입… 고전발레에 치우쳐있던 동작 수정
"다양한 스타일 적응하게 만들 것"

"고개를 왼쪽으로 더 기울이고…. 뒤에서 안을 때는 이렇게 감정을 살려 주세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실, 앳된 얼굴의 외국인 안무가가 무용수 김현웅과 김리회에게 다가와 동작을 세밀하게 지도했다. "다시 해 보죠." 연습실에 흐르는 음악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다. 여자가 남자의 뒤에서 두 팔로 상체를 껴안더니 이내 자세를 낮춰 다리를 안는다. 계속되는 2인무는 우아하면서도 빠르고 역동적이다.

/김지호 기자
/김지호 기자
이 청년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데미스 볼피(Volpi)다. 만 28세로, 국립발레단 객원수석무용수인 김현웅보다 다섯 살 어리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인 그는 올해 독일 무용계의 최고 권위상인 '도이처 탄츠프라이즈'에서 미래상(未來賞)을 받았다. 국립발레단에 긴급 투입된 것은 지난 2월 부임한 강수진 단장의 요청 때문.

"제가 원래 강수진을 무척 존경하거든요. 그분은 프로페셔널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표현력도 대단하세요. 작년엔 처음부터 그분이 출 걸 생각하고 전막 작품 '크라바트'를 안무하기도 했지요." '크라바트'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킬힐(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춰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작품이다.

이달 보름 넘게 한국에 있었던 볼피는, 강수진 단장이 펼치는 '국립발레단 개조(改造) 프로젝트'의 '1호 요원'인 셈이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현재 고전발레 레퍼토리에 치우쳐 있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모던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발레 스타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겠다는 것.

그가 한국에서 전수한 자신의 안무 작품은 '리틀 몬스터스'다.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 3곡이 잇달아 흐르는 가운데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무르익고, 이별한 뒤 외로워하는 약 10분 동안의 짧은 모던발레 작품이다. "멈춰 있는 포즈를 보여주는 고전발레와는 다릅니다. 쉬었다 가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팔다리를 계속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죠.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기초가 워낙 탄탄해서 습득 속도도 빨랐습니다."

데미스 볼피(왼쪽)가 무용수 김현웅과 김리회에게‘리틀 몬스터스’의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고전발레의 기초는 발과 다리를 엉덩이 관절에서 바깥쪽으로 향하게 하는 턴아웃(turn-out)이지만, 볼피는 정반대로 안쪽으로 향하는 턴인(turn-in)을 하게 한다. 한 다리로 서서 팽이처럼 몸을 빙글 돌리는 피루엣(pirouette)을 할 때는 공중에 든 발등을 쭉 펴는 포인트(pointe)가 아니라 펴지 않는 플렉스(flex)로 바꿨다. 이 파격적인 작품은 오는 11월 국내 무대에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조' 과정 속에서도 국립발레단은 그들의 기본 바탕인 고전발레를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오는 26~29일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화려함을 자랑하는 희극 발레 '돈키호테'를 공연한다. '온고(溫故)와 지신(知新)의 투 트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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