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그녀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열넷 줄리엣으로

입력 : 2014.06.23 01:21

수원화성국제음악제 폐막공연 소프라노 홍혜경

천둥, 번개와 소나기도 그녀를 누르진 못했다. 21일 저녁 수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수원화성국제음악제 폐막공연 주인공은 소프라노 홍혜경(57)이었다. 공연 30분 전부터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는 오후 8시가 되자 거의 멈췄다. 공연 후반 번개가 한 번 번쩍이고 천둥이 으르렁댔지만, 홍혜경은 끄떡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 데뷔 30년을 맞은 이 소프라노는 그녀가 왜 정상급 성악가인지를 실력으로 보여줬다. 2년 전 메트에서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주역을 맡은 홍혜경은 이날 줄리엣의 아리아 '꿈속에 살고파'를 서정적 목소리에 담아냈다. 청순한 열넷 소녀 줄리엣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연주였다.

지난 21일 수원화성국제음악제 폐막 공연에서 김대진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함께 소프라노 홍혜경이 노래하고 있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지난 21일 수원화성국제음악제 폐막 공연에서 김대진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함께 소프라노 홍혜경이 노래하고 있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홍혜경의 대표작이기도 한 푸치니 '라 보엠'을 노래할 때는 19세기 파리의 가난한 연인 미미로 돌아갔다. 서른 살 아래 막내아들뻘 제자인 테너 장기영(연세대 3년)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목소리나 표현력은 젊은 연인 그대로였다. 홍혜경과 함께 '라 보엠'의 '오, 아름다운 아가씨'를 부른 장기영은 당당한 목소리로 차세대 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피날레는 열흘 전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과 같은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연인 카바라도시를 구하기 위해 경찰서장 스카르피아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토스카가 가수의 삶을 돌아보며 부르는 아리아를, 홍혜경은 자기 얘기인 듯 혼신을 다해 불렀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오페라에서 토스카를 부른 적은 없지만 내 삶을 말해주는 노래라서 골랐다"고 했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쓴 야외 공연이지만 홍혜경은 노래하는 목소리만으로는 나이를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탄력 넘치고 활기 있는 아리아를 불렀다. 이 성악가가 어떻게 40대 후반에 비올레타를, 50대 중반에 줄리엣을 부르며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 있는지,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김대진이 지휘한 수원시향은 시민들을 위한 정규 레퍼토리로 야외 음악회를 정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잔디밭 가장자리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편 연인들이 서로 몸을 기댄 채 초여름밤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공연 중간 튀어나온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강아지가 짖는 소리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