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냐, 광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입력 : 2014.06.19 00:07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주연 이승헌

"자, 따라 해요. 식칼… 식칼… 식칼…!" '몸이 벌벌 떨린다'는 '전율(戰慄)'의 사전적 의미가 싸늘하게 다가왔다. 지난 1월 대학로 게릴라극장, 에우제네 이오네스코 원작의 연극 '수업'(연출 이윤택)에서 사이코패스 노교수 역을 맡은 배우는 신들린 광기에 사로잡힌 듯 거세게 몸을 빙빙 돌렸다. 눈빛은 식칼보다 날카로웠고, 윗도리 셔츠만 달랑 입은 반라(半裸)의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커튼콜이 끝나자 관객들은 그제서야 숨을 내뿜으며 "그 배우 누구냐"고 수군거렸다.

배우 이승헌이 2012년 원작자의 고향인 루마니아에서‘수업’을 공연했을 때 현지 배우들은“연극‘수업’을 보고 연기 수업을 받았다”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명원 기자
배우 이승헌이 2012년 원작자의 고향인 루마니아에서‘수업’을 공연했을 때 현지 배우들은“연극‘수업’을 보고 연기 수업을 받았다”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명원 기자
그는 강도 높은 조련으로 유명한 연희단거리패 우리극연구소 4기(期)인 배우 이승헌(42)이다. 1997년 '오구'에서 뱀귀신 역으로 처음 무대에 섰으니 올해로 연극 경력 18년째. 그동안 '햄릿' '봄날은 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숱한 작품에서 내공을 쌓았고, 지금은 국내 연극계의 대표적인 40대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 4월 '피의 결혼'에서는 순박한 시골 청년이 광폭한 복수심으로 불타 칼을 들고 연적(戀敵)을 추격하는 변화무쌍한 연기를 보여 '천(千)의 얼굴을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 "플라멩코 춤 같은 신체 연기가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연습하면 된다. 정말 어려운 것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무대에 서는 일이다."

그는 이번 주말 개막하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연출 알렉시스 부크)을 통해 또 변신을 시도한다. "대단히 우습고 재미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의외로 엉뚱하고 엉큼한 치정극이 많아 현대 관객과 통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배우 3명이 97분 동안 정신없이 펼쳐 보이는 이 영국산 코미디극에서 그는 얼굴을 하얗게 칠한 광대 분장을 하고 금방이라도 배꼽을 간질일 듯한 표정으로 나온다. 하지만 전력(前歷)을 아는 사람이라면 '배트맨'의 악당 조커로 보일 것이다.

3인극‘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의 이승헌(오른쪽). /연희단거리패 제공
그는 고교 시절 동네 교회에서 열린 연극에 발을 들인 뒤 예상치 못한 마력(魔力)에 끌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처음엔 영화배우 유오성을 닮은 외모 때문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 "뭐, 요즘은 활동을 많이 안 하시더라. 저한테는 다행이다." 연습에 몰두하다가 지쳐 분장실에서 깜빡 조는 바람에 무대에 나올 타이밍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 "'수업' 같은 연극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옳고, 이건 곧 죽더라도 꼭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버틴다." 그것은 연극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세상에 대해 무언가를 외칠 수 있는 배짱일 것이다.


▷연극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20~28일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02)76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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