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 죽어도 권력은 살아있군요

입력 : 2014.05.29 00:31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 재해석한 '줄리어스 시저' 개막

"오! 줄리어스 시저! 그대는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가?"

단구(短軀)에서 그토록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줄은 몰랐다. 브루터스 역의 윤상화가 눈을 부릅뜨고 절규하듯 이 대사를 말했을 때, 그것은 이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듯했다. 이미 죽은 절대 권력자가 여전히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 말이다.

지난주 개막한 연극 '줄리어스 시저'(셰익스피어 작·김광보 연출)는 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올라가는 숱한 셰익스피어 극(劇) 중에서도 가장 기억될 만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원작의 대사에 충실하면서도 긴박하고 충격적인 연출로 관객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컴퓨터게임을 연상케 하는 음향과 현란한 조명, 빠른 장면 전환을 본 한 20대 관객은 "꼭 영화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마피아 두목처럼 옷을 입은 시저(왼쪽·손종학)를 향해 안토니(오른쪽 러닝셔츠 입은 사람·박호산) 등 부하들이‘만세’를 외치고 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줄리어스 시저’에서 마피아 두목처럼 옷을 입은 시저(왼쪽·손종학)를 향해 안토니(오른쪽 러닝셔츠 입은 사람·박호산) 등 부하들이‘만세’를 외치고 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연출가 김광보는 인물 간의 심리와 갈등을 첨예하게 펼쳐내기 위해 잔가지를 과감하게 쳐냈다. 원작에 등장하는 2명의 여성 배역을 없애고 남성 배우 16명만 무대에 올렸으며, 첫 장면부터 곧바로 주인공들을 등장시켰다. 현대식 코트와 군화 차림으로 나온 배우들의 의상은, 고대 로마의 옛이야기가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은 정치극임을 시사한다.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옥좌에 오르려는 시저(손종학)는 마피아 두목처럼 음험하고 탐욕스럽게 묘사된다. 그의 피살 이후 권력을 계승하는 안토니(박호산)의 차림새와 포즈는 노골적으로 영화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를 패러디하고 있으나, 표정과 말투는 야비하기 짝이 없다. 브루터스가 죽은 뒤 "먼 훗날 누군가는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사내였다'고 말할 거요"란 안토니의 마지막 대사는 조소(嘲笑)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은 곳곳에서 현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은유를 보인다. 지나친 권력욕을 지닌 시저는 '비상식적 상황'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로마를 더 사랑했기에 그를 죽였다"고 외치는 브루터스는 '비상식적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원칙주의자다. 이 원칙주의자는 대중의 속성을 꿰뚫어보는 선동가 안토니에게 무참히 패하기 때문에 '비상식적 상황의 재림(再臨)'이 이뤄지게 된다.

'줄리어스 시저'는 1925년 셰익스피어 작품 중 처음으로 국내에서 공연된 작품이지만, 스케일이 크고 등장인물이 많아 무대에 오른 것은 1954년 극단 신협과 2002년 국립극단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특히 '종신 집권을 노리던 독재자가 신뢰하던 측근에게 배신당해 암살당한다'는 줄거리는 1980년대에는 공연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6월 1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연 시간 120분,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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