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다른, 그래서 아름다운

입력 : 2014.04.28 18:02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의 대가 이춘희와 파격적인 안무와 패션으로 눈에 띄는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만났다. 언뜻 그려지지 않는 양극단의 만남은, 그래서 더 큰 시너지를 낸다.



국립극장에서 특별한 공연이 마련됐다. 경기민요 명창들이 한데 모여 큰 공연을 마련한 것. 3일 공연에 동원된 인원만 3백명 이상이다. 전설의 경명창 박춘재, 이창배, 안비취를 기리는 공연 <설립자들>이다. 이들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며 마련한 헌정 무대였다.


이창배와 안비취의 제자였던 이춘희(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가 중심이 되어 이은주, 김영임 등과 함께 마련한 이번 공연에서 의외의 인물이 눈에 띄었다. 바로 현대무용가 안은미다. 안은미는 이 공연의 총연출자로 나섰다. 민머리와 튀는 의상이 트레이드마크인 그녀에게 ‘전통’이나 ‘민요’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공연을 함께하게 되었나요?


이춘희 저희가 극과 극이죠? 저는 그게 좋아 보였어요. 그동안 안은미 선생님 공연에 제 제자들이 가끔 출연했거든요. 양념처럼 적절하게 잘 살려주면서 투입시키는 연출이 좋았어요. 덕분에 안 선생님 공연을 자주 보게 됐는데, 무대 세트에 목숨 걸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 걸 알게 됐어요. 의상 컬러도 대단하고. <설립자들>이 큰 공연인 만큼, 우리가 늘 했던 방향이 아닌 저분의 눈높이에 한번 맞춰볼까, 하는 생각에 총연출을 제안하게 됐죠.


안은미 이번 공연의 수익금을 박춘배 선생님 동상 건립에 쓰신다고 해요. 정말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고 응했어요. 그동안 저는 <바리공주>로 시작해 민요, 판소리 분야에서 일하면서 전통음악에 애정을 갖게 되었거든요.



안은미 선생님의 연출로 공연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이춘희 공연 전체를 다 바꾼 건 아니고, 몇 장면에서 안은미 선생님 아이디어가 잘 반영됐어요. 일단 많은 인원이 모두 앉을 수 있게 무대를 경사지게 했고 하얀 배경도 좋았고, 무대를 최대한 활용한 점들이 맘에 들어요. 그동안 제가 ‘이별가’를 부를 때 옥색이나 흰색 한복을 입었는데, 이번에는 빨간색 한복에 머리에도 뭘 쓰기도 했고요. ‘맹꽁이 타령’을 부를 때 50명 정도 나와 노래하는데, 옷을 알록달록 입고 갓에도 노란색을 칠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재미있게 연출됐죠.


안은미  ‘맹꽁이 타령’이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편곡으로 리듬을 달리하니까 클럽의 아이돌 음악 같더라고요. 민요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만 손대면 내용이나 리듬이 정말 재미있거든요. 이 무대에서 50명의 출연자들이 미친 듯이 춤을 췄죠. ‘이별가’를 부를 때 이춘희 선생님은 빨간색 옷을 처음 입어봤다고 해요. 저는 ‘이별가’라고 해서 차분한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슬픔을 딛고 다음을 기약하는 이별처럼, 꽃 한 송이로 이별을 이야기하듯, 꽃잎이 하나씩 떨어질 때의 애잔함을 전했으면 했어요.



처음 두 분이 함께한다고 할 때 주변의 우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이춘희 몇몇 사람들은 그랬죠. ‘전이 무용가에게 우리 것(전통음악)을 맡기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했어요. 저는 “한번 해보자” 했지만, 큰 모험이었죠.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게 싫고 불만이었죠. 되도록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이지만 정신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요.


안은미  화합의 장이었고, 서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저는 이번 공연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우리 민요가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혹시 ‘비단 타령’ 아세요? 노래 가사가 비단 이름을 나열하는 거예요. 그 당시 평민들은 비단을 입을 수 없으니까 노래로서 해소하지 않았나 싶어요.



두 분, 서로의 첫인상이 궁금하네요.


이춘희 무대에서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전이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죠. ‘아… 저 나이니까 되나? 젊어서도 그랬을까?’ 한번 물어보고 싶더라고요.(웃음)


안은미  아마 선생님 세대에는 저 같은 애가 없었을 거예요.(웃음) 선생님은 연세가 많으신데도 오픈 마인드라서 놀랐어요. 두 번 질문하지 않으세요. ‘한번 해주실래요?’ 하면 그냥 하세요.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나신 것 같아요. 제자를 길러내실 때의 엄격함과 달리 정말 애정이 많으시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싶어 하세요. 서로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아요.

이춘희,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춘희는 지난 3월 7~8일, 파리에서 열린 제 17회 상상축제에 초청받아 개막 공연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바로 돌아와 <설립자들> 공연을 한 뒤, 3월 17일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의미 있는 공연을 했다. 최근에는 여섯 곡의 ‘아리랑’을 포함한 음반이 유럽 고음악 전문 레이블인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출반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 이쯤 되면 세계로 퍼져나가는 파급력이 싸이 못지않다.


유럽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에서의 음반 발매는 꽤 의미 있는 성과네요.
여섯 곡의 ‘아리랑’에 ‘이별가’ 등이 들어 있는데, 글쎄 그 음반이 파리에서 팔리더라고요. 파리 공연을 갔을 때 음반 가게 들러봤는데, 두 개만 있더군요. 많이 있었는데 다 팔리고 두 개 남은 거라고 했어요.


파리 공연은 어땠나요?
제가 항상 하는 말이, ‘한국 사람은 우리 것을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국악의 장르는 다양한데, ‘국악’ 하면 판소리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경기민요 하나로 해외에서 공연한 게 처음이었는데, 한 풀었죠.


파리 청중은 잘 듣던가요?
우리나라 청중은 흥을 위주로 좋아하는 편이에요. 파리에서는 무반주로 앉아 소리만 했어요. 그 소리를 감상하더라고요. 어찌나 감상 태도가 좋은지 깜짝 놀랄 정도예요. 조용하게 듣다가 박수는 열정적으로 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공연을 봐도 이럴까 싶을 정도였어요.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우고 연구하려는 노력이 있어요. 그 나라의 전통을 보고 듣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아리랑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영광스러운 현장에 계셨어요.
등재 여부를 모르니 축하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날 오전부터 한복을 입고 11시간을 꼬박 기다렸어요. 그런데 회의장이 너무 엄숙해 노래 부를 분위기가 아니더라고요. 짧은 순간에 어떻게 하면 남의 귀를 쫑긋하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아리랑>이 문화유산으로 확정됐다는 발표가 되자마자 곧바로 ‘나를 버리고~’ 하며 소리를 띄우면서 무대로 걸어나갔어요. 사람들 표정이 ‘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신이 나서 2절까지 거푸 불렀어요. 노래를 끝내고 인사하는데 모두 나와서 사진 찍자며 감싸 안더군요.


좋은 아이디어네요. ‘나를 버리고~’라고 부르는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가슴이 벅차요.
‘아리랑~ 아리랑~’ 하고 처음부터 부르면 약간 늘어지는 면이 있잖아요. 그 자리에서 ‘아리랑’이 당연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 셈이었죠. 함께 간 외교관, 대사관, 문화재청 직원들을 붙들고 울기도 했어요. 끝나고 다 같이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데, 청장님이 <아리랑>이 몇 종류가 있냐?’고 물으셔서 ‘서울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10가지 정도의 <아리랑>을 조금씩 다 불러드렸어요.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재미있었어요.


이번 공연이 스승을 위한 공연인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배움은 무엇인가요?
안비취 선생님은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도리를 다 갖춰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너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시면서요. 제가 조신하고 얌전한 편이 아니었거든요. ‘등 뒤에 대학교수라고, 술집 여자라고 써 있는 게 아니다. 행동을 보고 취급받는 거다. 우리는 경기민요를 하는 사람이니,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옷부터 헤어스타일, 웃음소리, 말하는 태도, 손짓이나 눈빛까지도 굉장히 세밀하게 지적해주셨어요.



안은미, 일상에서 찾는 가치


안은미는 지난해 MBC <무한도전> ‘2013 자유로 가요제’에서 김C와 정준하 팀 안무 담당자로 출연해, 해초 댄스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꽃이 주렁주렁 달린 헤어밴드와 ‘꽃 가라’ 원피스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놀라게 하는 건 비단 이런 외양만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쇼킹하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댄스’, ‘스펙큘라 팔팔 댄스’ 등 독특한 주제로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청소년 할 것 없이 무대로 불러낸다. 현대무용으로 해외 극장들과 공동 작업을 했고, 영국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에 초청받으면서 마니아와 평단의 지지를 넘어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현대무용가인데도 전통음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현대, 전통이라 구분해서 말하는데, 전통이라 해봤자 60년이에요. 오래된 묵은지가 아니에요. 그 음악이 지금도 유효한가, 자주 듣느냐 아니냐가 그걸 결정할 뿐이죠. 민요도 케이팝이에요. 저는 이춘희 선생님께 “지금 태어났으면 소녀시대 했겠네” 했어요. 케이팝은 핫팬츠 입고 하는 거고, 민요는 한복 입고 하는 건가요? ‘현대’는 동시대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경기민요도 현대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무한도전>에서의 해초 댄스는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김C는 원래 알던 친구였어요. 어느 날 음악을 들고 왔는데, 몽환적이고 바다 같은 걸 하고 싶대요. 원래도 대중적 코드가 강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음악을 들어보니까 댄스 곡도 아니었고 이상하게 서정적이면서 리듬 있는 곡이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만들게 된 거예요.


방송에서도 사람들이 선생님의 패션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었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하시나요?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해요. 정체되는 게 가장 무서운 거죠. 저는 사람들의 기쁨이 아니라 슬픔을 이해한 것 같아요. 뭘 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알겠으니까 어떻게 하면 숨을 쉬게 할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무대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춤도 삶을 위해 있는 거예요. 춤은 인간이 자유로울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탈이죠. 그래서 역사적으로 춤은 배척을 많이 받았어요. 신명이 난다고 하죠? 미치는 거예요. 계속 미치면 일할 수 없겠죠. 신명을 공포스러워하는 대상이 춤을 가둬놓는 거죠. 예쁜 춤만 춤이 아니에요. 춤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어요. 어떤 할머니는 춤을 추고 나서 ‘평생 맺힌 한을 풀었다’고 하더군요. 틀에 갇힌 춤에서 벗어나면 대단한 춤꾼들이 많아요. 자신들이 발견하는 춤이니까요. 누가 제일 잘한다, 예뻐 보인다, 그런 말은 안 듣고 싶은 무대였어요.


누굴 닮아 이렇게 춤을 좋아하게 됐나요?
저희 엄마가 좀 심하시고,(웃음) 아버지는 조용한 분이에요. 제가 우리 엄마 신명만 닮았겠어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신명이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지금은 미국에 계신데, 가끔 한국에 오면 그렇게 춤을 추세요. 그것도 갑자기. ‘나 완전 예쁘지?’ 하면서. 저는 엄마가 춤추는 것을 ‘잘한다!’면서 지켜보고요.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저희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인사성 밝고 인사 잘했다고 해요. 체력도 강해서 뭘 하라고 하면 ‘노’가 없었대요. 다섯 살 때에도 산에 뛰어다니고 피곤함을 모르는 아이였어요. 부끄러워하는 것도 없었고.


이제 ‘스펙큘라 팔팔 댄스’ 프로젝트가 끝났는데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스펙큘라 팔팔 댄스’는 근대성에 대한 기록인데, ‘사실은 도시가 춤추고 있었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그것을 끝으로, 두산아트센터와 4년째 4부작으로 했던 프로젝트를 마치고 저는 다른 곳으로 가요. 대부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로요.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안은미의 1분 59초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예요. 일반 사람들과 준비하고 그곳 작가들과 협업하면서. 또 대부도에 있다 보니 재미있는 워크숍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놀러 와요!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두경아 기자 | 사진 박종혁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