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영욕의 80년생, 비 젖은 해금이 한없이 애달프다

입력 : 2014.02.24 11:38
사람 사는 모양은 500년 전과 다름이 없나 보다. 조선 시대 왕가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요즘이다. 낭독공연 ‘영영이별 영이별’은 그런 중에서도 세조(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端宗, 1441~1457)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의 생이 소재다. 정순왕후 본인이 직접 한 많은 삶과 피비릿내 나는 왕가의 역사를 독백한다. 

낭독공연 '영영이별 영이별' 무대에 오른 배우 박정자(사진 우)와 해금 연주자 강은일(사진 좌)의 모습.
낭독공연 '영영이별 영이별' 무대에 오른 배우 박정자(사진 우)와 해금 연주자 강은일(사진 좌)의 모습.

장식 없이 단출한 무대에 배우 박정자(71)가 걸어 들어온다. 자식도 없이 하늘 같은 지아비와 어렵게 얻은 양아들까지 먼저 떠나보낸 영욕의 80년생을 박정자보다 잘 표현할 사람이 있을까.

하얀 소복을 차려입은 그가 앉은 곳은 이승이 아니요 그렇다고 저승도 아니다. 이곳에서 그는 50년 연기 인생의 내공을 오롯이 담아낸 목소리의 깊은 울림과 미묘한 호흡만으로 한 많은 정순왕후의 삶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때로 아스라이 들리는 마음의 소리와 영상들은 한 편의 시 같고 읊조림 같다.

낭독 공연은 커다란 한지에 그리는 수묵화처럼 여백이 한량없다. 무대 한 편에 선 해금과 기타 앙상블이 가을날 스산하게 떨어지는 비처럼 애잔하기 그지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해금 연주자 강은일의 솜씨다. 박정자의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와 애잔함 가득 머금은 해금의 떨림이 상상 이상으로 조화롭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었다.

왕권 찬탈의 과정에 가려진 주변인의 생과 조선의 역사까지 세밀하게 더듬어 보는 재미도 큰 매력이다.

세상사의 부조리, 삶의 애환을 충분히 느껴본 사람이라면 그 깊이가 충분히 전달될 만한 무대였다. 아직 생의 에너지로 충만한 이들에게는 무거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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