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天像(비천상) 깎으며 10년… 억울함도 하늘로 훨훨

입력 : 2014.01.13 23:21

[목조각 匠人 허길량… 12년 만에 두번째 전시회]

訟事로 무형문화재 지위 박탈… 훌훌 털고 싶어 '飛天像' 몰입
"누명 벗었으니 복원되겠죠"

/오종찬 기자
구름을 닮은 천의(天衣) 자락이 휘날린다. 바람에 몸을 맡긴 비천(飛天)이 바라를 치면서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다. 경쾌한 금속음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살포시 다문 입술엔 온화한 미소.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 벽화 속의 비천 문양이 입체 목(木)조각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2년 33점의 목조 관음상을 전시했던 허길량(61·사진) 장인이 12년 만에 두 번째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소나무 비천 되어'전(展).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과 오대산 상원사 동종, 각종 벽화와 탑신에 등장하는 문양을 바탕으로 입체화한 비천상 33점을 전시했다. 불교의 도리천(忉利天)은 33개의 하늘로 이뤄져 있는데 비천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며 이 하늘을 오가는 선인(仙人)이다. 허씨는 지름 80㎝ 이상의 굵은 통나무를 깎아 복잡하고 오묘한 형상을 빚어냈다.

"하늘을 날고 구름 위에 내려앉는 신비한 모습이라 작업이 유독 힘들었습니다. 얇은 부분은 잘못하면 부러지기 때문에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야 했어요."

어린 시절, 그는 가난 때문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 맡겨져 1년간 동자승으로 살았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해 15세에 목조각에 입문한다. 서수연 선생에게 목공예를, 이인호 선생에게 불화를 배웠다. 1980년 조선 불교미술의 맥을 이어온 우일 스님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불교조각의 기법과 의식을 전수받았다. 그는 "불상은 기교로만 깎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아닌 마음에 부처를 새겨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고 했다. 밀양 표충사 사천왕상, 해남 대흥사 천불전 삼존불 등 우리나라 사찰의 대표 불상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외길 인생 46년째. 굴곡도 많았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지위를 박탈당한 첫 번째 장인이다.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보유자로 지정됐지만, 동종업계 종사자와 송사에 휘말려 3년 만에 지정 해제됐다.

바라를 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천상.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 벽화의 비천 문양에 천의(天衣)와 구름을 붙여 입체화했다. /허길량 장인 제공
바라를 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천상.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 벽화의 비천 문양에 천의(天衣)와 구름을 붙여 입체화했다. /허길량 장인 제공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아내는 미국에 가서 살자고 했지만, 국가 지정 문화재까지 됐던 자존심이 있지…. 장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각도를 붙잡았지요."

작품 소재로 비천상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훌훌 털고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무를 깎고 파고 다듬었다. 한 점을 조각하는 데 3~4개월이 걸렸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고뇌와 눈물이 응집된 작품이라고 했다. 소나무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사포를 쓰지 않았고, 예리한 조각도를 갈아서 칼끝으로만 마감했다. 완성된 후에는 생옻칠을 여러 번 해서 고급스러운 질감을 냈다.

'33점이 다 완성될 때쯤이면 복원되지 않겠나' 하는 희망도 있었다. 그는 "2011년 승소 판결을 받아 '누명'을 벗었지만 아직 재지정 소식이 없다. 언젠가는 복원되리라 믿는다"고 했다. 전시는 16일까지.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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