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로미오와 줄리엣, 이루어진 사랑일까

입력 : 2013.10.31 23:46

[장막 희곡, 손기호 '사랑을 묻다']

무대 통해 관계를 탐색하던 그, 이번엔 자신을 들여다 봤다… 사랑이라는 건 애초에 뭘까

"네? 진짜요? 어떻게 이런 일이!"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부르르 떨렸다. 당선 통보를 받은 손기호(43)는 말을 더듬다 "송구스럽고, 영광스럽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제7회 차범석희곡상 장막희곡 부문에 '사랑을 묻다'로 당선된 그는 대학로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 경주에서 태어나 안동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배우로 출발했다.

"전화를 끊으며 연우무대 초기에 뵌 차범석 선생님의 모습이 스쳤습니다." 포스터 붙이기와 조명 껐다 켜기 담당이던 그는 전국어린이연극경연대회 심사를 맡은 차 선생의 '보조'가 됐다. "앙망하는 분을 곁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죠. 그 잠시의 만남이 제 속에 작은 불을 하나 켰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손기호는 사랑을 묻다 큰 상을 받았다. 앞으로도 이번만큼 어려운 질문을 무대를 통해 계속하겠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손기호는 사랑을 묻다 큰 상을 받았다. 앞으로도 이번만큼 어려운 질문을 무대를 통해 계속하겠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극작에 눈을 뜨게 한 작품은 '날 보러와요'였다. 장기 공연 내내 무대 진행을 맡다보니 싫든 좋든 수백 번을 봤다. 어느새 대본을 달달 외웠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극작의 공식'이 머리에 들어와 있었다"고 했다.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읽으며 은유를 익혔고,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을 외우며 정서를 드러내는 법을 깨쳤다.

그는 무대를 통해 '관계'를 집요하게 탐색해왔다. 2004년 자신의 극단 이루를 창단하며 올린 '경주 3부작'이 시작이었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2004)에서는 부자(父子),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2008)에서는 나와 남,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2011)에서는 부부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수상작인 '사랑을 묻다'는 질문을 '나'에게로 돌리면서 출발했다. "제 안에 있는 충동과 갈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사람은 예순 일흔이 돼도 새 사랑을 갈구하죠. 애초에 사랑이라는 건 무엇일까, 궁금하더라고요."

'사랑을 묻다'는 대사 한 줄 한 줄이 화살이다. 발화되는 순간 곧바로 날아와 꽂힌다. 인생에 지친 40대 주인공 명호는 한탄한다. "이렇게 술 처먹고, 싸고, 이쁜 거 보면 꼴리고, 또 무섭고 불안하고, 가슴을 때리면 아프고… 살았지. 그런데 김명호가 없어. 내가 없네, 내가. 나 사랑하고 싶어." 그러다 곧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낭만적인 대사를 읊는다. 그 낙차가 처절하게 울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갈망하다 죽었죠. 사랑을 이룬 것일까요, 아닐까요? 진짜 몰라서 물어본 거였어요. 지금 보니 엄청난 질문이었네요. 이렇게 큰 상을 안겨줬으니까요."


[심사평] '사랑을 묻다'는… 희곡의 가치 높인 화법, 공연과의 만남도 우수해

차범석희곡상은 올해부터 공연된 신작 희곡 중 수상작을 뽑는다. 희곡과 공연의 상호 작용을 감안한 시도로, 방점은 희곡의 힘에 둔다. 그 첫 실험인 이번 심사에서 손기호가 쓰고 연출한 ‘사랑을 묻다’를 뽑았다. 연기를 가르치는 중년의 겸임교수와 대학을 두 번 다니는 여제자의 사랑이 주된 줄거리다. 손기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끌어들여 서로를 반영하게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춘기 남녀의 확신에 찬 사랑이라면, 교수와 제자의 사랑은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자아 탐색 과정이다.

돈 못 버는 남편을 깔보는 아내, 그 아내와 놀아나는 후배 등이 도덕적으로 기반이 허약해진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교수 역의 김용준은 혼돈에 젖은 인생을 공감 가게 표현해 희곡의 가치를 높였다. ‘사랑을 묻다’는 희곡과 공연의 우수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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