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지휘한 서른셋 한국 여인

입력 : 2013.10.09 23:27

[런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의 新作 '박쥐' 지휘자 김은선]

"유럽이 내 지휘 감동할 때까지… 빈 오페라 제의 오더라도 사양"

지휘자 김은선
오케스트라 피트 위로 뒤로 질끈 묶은 긴 생머리가 찰랑거렸다. 두 손으로 파도 타듯 지휘봉을 젓는 모습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한국인 여성 지휘자 김은선(33). 런던 콜리세움 극장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의 야심작 '박쥐'의 음악을 책임진 주역이다.

귀에 익숙한 왈츠로 시작하는 서곡부터 '친애하는 후작님' '차르다슈'등 보석 같은 아리아들이 촘촘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는 유럽 오페라극장의 인기 레퍼토리다. 영국의 대표적 오페라단 ENO가 20년 만에 올린 '박쥐'는 2359석 대극장 티켓이 모두 팔려나갔다.

어떻게 이 무대에 섰을까. "2012년 봄에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라보엠'을 지휘했는데, 극장장이 매우 만족해하면서 2014년 가을에 올라갈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지휘를 즉석에서 맡겼어요. 마침 그때 '박쥐' 지휘자를 찾던 ENO 음악감독이 친구인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장과 통화하다가 제 얘기를 듣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박쥐'는 개막 공연 직후, 평론가들의 악평에 시달렸다. "심리극보다는 시트콤 같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은선의 지휘에 대해선 "효과적이고 뛰어난 지휘"(일간지 인디펜던트)라는 우호적 비평이 다수였다. "첫 5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의자에 기대 앉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등받이에서 몸을 떼서 앞으로 몸을 숙이도록 만들어야 해요. 내가 원하는 소리와 템포, 뉘앙스를 정확히 보여주면 단원들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2008년 스페인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가 주최하는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마드리드 극장 부지휘자가 됐지만, 2010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으로 활동무대를 옮기자 모든 게 달라졌다. 자리가 없었다. "동양인 여성인 데다 나이까지 어리니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그래도 걱정 안 했어요. 작곡에서 지휘로 전공을 바꿀 때부터 이미 각오했거든요." 1주일짜리 임시 부지휘자로 전전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지난달 30일 런던 콜리세움극장에서 개막한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의 신작‘박쥐’. /ⓒRobert Workman
지난달 30일 런던 콜리세움극장에서 개막한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의 신작‘박쥐’. /ⓒRobert Workman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라보엠'의 성공적 데뷔가 전환점이 됐다. ENO 지휘가 끝나는 다음 달이면 프랑스 낭시에서 콘서트를 지휘하고, 2014년엔 이탈리아 마체라타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푸치니 '토스카'를, 빈 폴크스 극장과 마르세유 극장에선 '라트라비아타'가 예정돼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해요.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제의가 들어와도 사양하려고요. 유럽 문화를 제 것으로 만들어 유럽인들이 제 오페라와 심포니 지휘를 듣고 감동하게 하고 싶어요.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