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191명의 춤사위, 89세 '전설'의 화답

입력 : 2013.04.04 23:26

'한국 무용의 살아있는 역사' 강선영 헌정공연 현장

"평소 입버릇처럼, 기진할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지난 3일 오후 6시, 배우 오지혜씨의 소개와 함께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커다란 막이 내려왔다. 막 위에 떠오른 다섯 글자는 '명가 강선영(�l嘉 姜善泳)'. 잠시 후 막이 걷히며 89세 '전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상궁의 호위로 등장한 강선영은 무대 위에 드높인 단상에 앉았다.

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의 대미를 장식한 태평무 장면. 높은 단상에 앉아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태평무의 대가 강선영이다. /사진 김찬복
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의 대미를 장식한 태평무 장면. 높은 단상에 앉아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태평무의 대가 강선영이다. /사진 김찬복
연한 옥색 한복을 입은 그가 지그시 바라보는 가운데 한국춤 1세대 스승 한성준의 혼(魂)을 이어받은 태평무가 시작됐다. 원래는 독무(獨舞)이나 이날은 제자 60명이 동시에 오른 군무(群舞)로 펼쳐졌다. 단상 위에서 춤사위를 바라보던 강선영은 어느 순간 장단에 맞춰 팔을 너울너울 흔들기 시작했다. 조용한 그 움직임을 따라 소매 속 바람이 무대를 휘감는 듯했다. 춤을 마친 제자들이 몸을 돌려 단상 위 스승에게 절을 올렸다. 답례로 그가 팔을 들자, 한국 무용사의 한 획이 새로 그어졌다. 한국 춤을 진두지휘해온 전설이 조용히 고별의 염(念)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불멸의 춤' 공연은 한국 춤의 느긋한 움직임에 도화선과 기폭제를 선물한 선구자 강선영에게 수많은 후학과 제자들이 바친 최고의 경의와 존경의 자리였다.

'즈려밟는 장단 마디마디에 대꽃이 피는 춤꾼'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대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무대를 위해 무려 191명의 제자가 함께 춤을 추었다. 경기도립무용단(예술감독 조흥동), 강선영춤보존회 제자들이 앞장서 나섰다. 강선영의 스승인 한성준의 신선무로 시작해 승무·장고춤·살풀이춤 등으로 이어졌다. 무용평론가 장인주씨는 "강선영 선생의 존재만으로도 지나온 무용사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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