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춤에 10만명, 내 춤에 10명? 뭐 어때"

입력 : 2012.11.16 23:43

'네 개의 벽' 공연하는 홍신자씨… 일흔둘에 75분 독무 도전
칠십의 사랑은 천진한 유희… 남편과의 대화에 NO는 없어
'가자, 먹자, 하자' 셋뿐이지

'Love is Play(사랑은 놀이다).' 2년 전 결혼한 부부는 청첩장에 이렇게 썼다. 그때 신부의 나이 70세, 신랑은 한 살 어렸다. 신부는 이제 72세가 됐다. 이번엔 75분 독무(獨舞) 공연 '네 개의 벽'에 도전한다. 스무 살무용수도 헉헉 댈 긴 시간이다. 이미 많은 일을 벌였고, 앞으로도 벌일 이는 무용가 홍신자(72). 지난 15일 강남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홍씨는 "그 나이에도 춤이 되느냐?"라는 질문에 "전혀 문제없다"고 답했다. "자신 있으니까 하는 거야."

'네 개의 벽'은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의 1944년 피아노곡. 1985년 홍씨의 안무로 뉴욕에서 공연됐다. 국내 초연은 1996년 예술의전당에서 했다. 대학생이던 기자는 매진된 표를 어렵게 구해 득의양양했다. 문화 좀 안다, 춤 좀 봤다고 하려면 홍신자 공연을 봐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 혹은 허영이 있던 시절이었다. 공연 당일, 홍신자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다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벽에 갇힌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관객의 절반은 졸거나 얼굴을 찌푸렸다.

75분 독무를 준비하는 무용가 홍신자씨가 지난 15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절정에 오르게 된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75분 독무를 준비하는 무용가 홍신자씨가 지난 15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절정에 오르게 된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홍씨는 "이번은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전까지는 보여주겠다고 애를 쓴 거였고, 진짜 보여주는 건 이제부터인 것 같아. 수십년 춤춰 보니, 관객이 나의 신(神)이야. 그 신 앞에 맨몸으로 서는 거지."

독무는 7년 만이다. 홍씨는 "오히려 3분의 2를 지나면서 절정의 느낌이 온다"며 "그때부터는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인간의 나이를 따라 정해놓은 눈금을 지우면서 살아왔다. 서른셋에 무용가로 데뷔했고, 유명세를 타던 서른여섯에 인도로 떠나 명상과 선(禪)의 바람을 일으켰다. 마흔하나에는 임신 7개월의 부른 배를 드러내고 춤을 췄다. 정작 그의 공연을 본 사람은 적었으나, 그를 둘러싼 화제는 어딜 가나 만발이었다.

데뷔 직후부터 줄기차게 외쳐온 화두가 '자유'다. 그를 널리 알린 베스트셀러 제목도 '자유를 위한 변명'(1993)이었다. 수십년 추구한 자유를 이제는 얻었을까? "완전한 자유는 죽음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지. 삶의 매 순간은 속박이야. 배고프면 먹어야 하는 것부터가 자유와 거리가 멀어. 그래서 매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 어제 뭐했는지, 그저께 뭐했는지는 잊어야 새롭게 살 수 있어."

홍씨는 "칠십의 사랑은 천진한 유희"라고 했다. 독일인 남편 베르너 사세 전 한양대 석좌 교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사랑하는 거 잊지 마"라고 말하고, 점심때는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가?"라며 상기시키고, 좀 있다가 "말할 게 있어"라며 다가와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홍씨는 "사랑한다고 표현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즐기고 감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로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가자, 먹자, 하자.' 그리고 그 제안에 '노'라고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현대무용은 고정 관객이 적다. 홍신자 춤처럼 생각하면서 봐야 하면 더 적다. "나는 내가 산 만큼 보여주는 거고, 관객도 산 만큼 보는 거고. 싸이 말춤 보러 10만명 모여도 내 춤 보려고는 10명 모일 수도 있지. 그래도 오케이! 나는 할 거야. 그게 홍신자 인생이야."

▷'네 개의 벽' 20~2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02)2272-2152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