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개인전 연 ‘수상한 예술가’ 구혜선

입력 : 2012.10.11 15:22

‘멀티 엔터테이너’라는 하나의 단어로는 어쩐지 설명이 부족하다. 배우이면서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하면서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구혜선. 수줍은 듯 하나씩 꺼내놓는 그녀의 잔상은 매번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확실한 건 그녀가 예술적인 감성을 제대로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

구혜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한가람미술관 갤러리7. 작품이 어우러진 공간의 느낌이 어쩐지 미스터리하고 오묘하다. 꽃처럼 예쁜 외모, 수줍고 사랑스러운 표정이 먼저 떠오르는 ‘구혜선 이미지’의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를 상상한다면 그 색다름의 정도가 조금 더 크게 다가오겠다. 미술 작업은 철저하게 작가의 감정에 충실해서 표현되는데, 구혜선의 120여 개 작품은 꼭 그 숫자만큼 다른 감정과 분위기를 내고 있다. 명쾌하게 드러나기도, 전혀 가늠할 수 없이 수상하고 미스터리해지기도 한다. 모두 다른 120여 개 작품들의 유일한 접점인 ‘작가 구혜선’을 만났다. 전시회 걱정에 잠을 한 시간도 채 못 잤다며 천천히 느릿느릿 말하는 그녀는 본인의 작품을 여유있게장 즐기고 있었다.

두 번째 개인전, 구혜선의 <잔상>

“전 올빼미예요. 밤에 잠을 거의 자지 않아요. 작업이 시작되면 잠을 잘 시간은 거의 없고, 그러다 보면 잠자는 걸 잊어요. 어떨 땐 잠자는 방법을 잊어버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이 되면 억지로 자기도 하는데, 최대한 시간 나면 자려고 노력해요. 어제도 거의 잠을 안 잤어요. 어젠 작업한 건 아니고, 전시회 준비하느라.(웃음)”

얼짱 출신 연기자로 시작해서 배우, 영화감독, 음악가, 화가, 소설가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전천후 예술적 전사로 활동하고 있는 구혜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말, “대체 그림 그릴 시간이 언제냐” 따위의 질문은 하지도 말라는 듯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커다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른한 듯 조용하게 전하는 그녀의 말은 상대의 귀를 바짝 기울이게 하는 힘을 가졌다.

“학교에 다니면서 드로잉 수업을 받았어요. 매일매일 한 장씩 그리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강제적이다 보니까 하루에 한 장씩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매일 억지로 그림을 그렸던 결과가.(웃음)”
3년에 걸쳐 진행한 작업이라지만, 작품의 수가 굉장하다. 집에 작품 둘 곳이 점점 없어져서 더 고민이 많았다면서,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 차례 정리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지난 2009년 소설 《탱고》 출간과 함께 이루어졌던 첫 전시 이후 두 번째 전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잔상’이다. 꿈에서 보았던 지나간 기억의 잔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림은 구혜선에게 치유이기도 위로이기도 한 대상이다. 영화나 다른 분야는 관객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이지만, 미술 전시는 다양한 볼거리를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단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요? ‘오리사탕’이요.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오리사탕을 상상하면서 그린 그림이라 애착이 가요. ‘회’라는 작품도 있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직접 회를 떠주시던 걸 떠올리며 기억 속 아버지의 손과 회로 뜬 물고기의 모양을 담은 작품이에요.”

긍정적으로 남을 돕는 삶

“제가 뭘 잘 몰랐던 시절이 있었어요. 봉사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서, 혼자 봉사활동을 떠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만났던 분들이 ‘왜 혼자 왔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봉사는 소문을 내고 함께해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요. 제가 잘못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이후에는 최대한 많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을 ‘처분’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작품 판매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도록과 작품 판매로 발생되는 수익은 전액 한국백혈병환우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지난해 몽골에서 백혈병 치료를 위해 온 네 살배기 서드커의 치료비 모금운동에도 참여한 바 있는 그녀는, 이번 개인전 수익 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들의 감염불안과 이동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무균차량(Clean Car)’이 원활하게 운행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남을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정보가 많이 나와 있지만, 저도 한번 앞장서서 해보고 싶었어요. 모르는 분들께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많거든요. 많은 분들이 관심만 가져주셔도 엄청난 힘이 되잖아요. 저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서 최대한 여기저기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무균차량 한 대 가격은 나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차량 유지비 때문에 운행이 중단된 차가 다시 운행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고 싶단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같은 소속사에 있는 션·정혜영 부부 보면서 많이 배워요. 제가 실질적으로 도와드린 건 없지만, 좋은 모습을 항상 보여주시니까 저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을 보면서 저도 그런 마음 갖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요.”
그러면서 그녀는 본인이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으면 긍정적으로 남을 돕는 삶을 살 수 있다”면서. 똑같은 것을 보고도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주변에 좋지 않은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날은 안 좋은 사람만 보이더라고요.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다 좋은 사람이라고. 그게 답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을 고치면서 살아가는 거.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그 어떤 나쁜 사람이라도 제겐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한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항상 봉사할 기회를 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 장편영화 <복숭아나무> 곧 개봉

갤러리 중앙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 작품을 보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영화 상영은 물론 즉석에서 연주를 하며 즐기는 콘셉트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연주가 가능한지 물으니, 잠시 주저하더니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녀의 작은 손가락으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멜로디. 본인의 두 번째 장편영화 <복숭아나무>의 OST에 수록된 곡이란다. 두 곡의 연주를 끝내고 조용한 목소리로 “두 군데 틀렸어요.(웃음)” 하고 말하는 모습에서, 예술가적인 면모가 제대로 느껴진다.

알려진 대로 구혜선은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상을 전공하는 대학생(그녀는 현재 성균관대 영상학부에 재학 중이다)의 신분으로 ‘과제’ 차원에서 하는 수준이 아니다. 10월 31일에 개봉할 장편영화 <복숭아나무>는 제천국제영화제에서 한 차례 주목을 받은 충무로의 기대작이다. 제천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상영이 되었는데 연출력과 메시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쌍둥이 형제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는 조승우, 남상미, 류덕환이 출연한다. 평소 조승우와 류덕환의 이미지가 닮았다고 생각했다는 그녀는, 이 배우들을 두고 “도화지 같다”는 평가를 내렸다.

“제가 인복이 많은 사람인가 봐요. 영화 하시는 분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대해주셨어요. 저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자격지심을 갖고 있던 시간도 있었지만, 물론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는데, 저에게 내색 안 하시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먼저 나서주셨어요. 영화는 제가 혼자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등 여러 감독님들이 저를 가르쳐준 스승들입니다. 저는 이름 하나 가지고 숟가락만 올렸을 뿐이고요.”

연기를 하는 배우로 데뷔를 했다. 작품에도 많이 등장했다. 그러다 현장에서 연기자와 정반대의 일을 하는 사람. 그녀는 스스로 감독이 되었다. 둘 다 매력이 넘치는 포지션. 모두를 경험하고 있는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영화 현장에서는 이성적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는 현장이 영화 현장이거든요. 연기 현장은 제가 저 같지 않은 현장이고요. 이성을 차리면 감정적으로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매력이 있어요.”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갤러리 한쪽에 마련된 영상관에서 영화 <복숭아나무>의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본인이 배우인지라, 배우를 고려할 줄 아는 구혜선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기대가 된다.

일상에서 받는 영감

인터뷰 며칠 전, 그녀는 염색으로 기분전환을 했다며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노란 머리를 한 사진을 공개했다.
“네, 그거 3일 만에 다시 염색했어요.(웃음) 정말 예쁘고 좋았는데, 며칠 되지도 않아 검은 머리가 쑥 올라오더라고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는데 식구들 반응이 시원찮아서.(웃음) 꼭 3일 그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리프레시할 수 있었어요. 꼭 그만큼의 일탈이면 충분해요, 전.”

그림 그리는 연예인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시선에 대한 부담은 없느냐 물으니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고 한다.
“함께하는 일이에요. 사실,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렇고. 보여드리는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 혼자 해서 저 혼자 좋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또 다양한 음악을 하는 것은 각각의 영역에 서로 자극을 주는 일이다. 일상의 많은 것에서 영감을 얻고 자극을 받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수상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임언영 기자 |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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