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시 왔다 '미친 꿈'을 찾아서

입력 : 2012.06.28 04:00

돌아온 뮤지컬 명작 '맨 오브 라만차'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가네 저 별을 향하여

―'맨 오브 라만차' 중 '이룰 수 없는 꿈'

2012년 여름, 더위에 지치고 일상에 포박당한 우리를 위해 그가 돌아왔다. 빛나는(?) 황금 투구를 쓰고 창을 치켜든 그가 외친다. "저 별을 향해 가자!" 알고 보면 투구는 쭈그러진 대야고, 별은커녕 지하 감옥조차 벗어나지 못한 신세지만, 그의 노래는 절로 주먹을 움켜쥐게 한다. "그래, 내겐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제작 오디뮤지컬컴퍼니)가 다시 꿈 전도에 나섰다. 지난 22일 재공연에 들어가 10월 7일까지 계속한다. 창녀 알돈자를 공주 둘시네아로 여기는 돈키호테의 '미친 꿈'이 잊고 있던 아름다운 기억을 두들겨 깨운다. 2005년 초연 후 이번이 다섯 번째 무대. 다시 찾아온 '라만차'의 매력을 들여다본다.

장난·능청·사랑스러운 돈키호테

이야기는 스페인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 세르반테스가 극중극 형식으로 돈키호테를 연기하며 흘러간다. 세무관이던 세르반테스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수도원에 세금을 부과했다가 체포됐다. 산초는 세금 고지서를 수도원 문에다 붙였다가 덤으로 끌려왔다.

3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선 황정민, '서편제'의 비정한 아버지였던 서범석, '닥터 지바고'의 홍광호가 돈키호테를 번갈아 맡는다. 개막일인 22일 서범석을 시작으로, 23일 황정민과 홍광호가 잇따라 본무대에 올랐다. 세 사람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순식간에 오가며 서로에게 뒤지지 않는 호소력을 과시했다. 황정민은 장난스럽고, 서범석은 능청스럽고, 홍광호는 사랑스럽다.

둥글둥글 풍선처럼 빵빵한 산초 이훈진이 주는 재미도 놓치기 아깝다. 해맑게 웃으며 '좋으니까, 그냥 좋으니까'라고 돈키호테를 찬미할 때는 '맛이 간' 돈키호테가 부러워질 지경이다.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를 사랑한 변호사였던 배우 서영주가 극중극에 나오는 영주(領主)역을 맡았다. "내 이름도 원래 영주니까"라는 그의 애드립은 간이 적당히 맞는 즐거운 양념이다.

돌아온 명작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중 돈키호테 (왼쪽·황정민)와 산초(오른쪽·이훈진)의 궁합은 극을 탄탄하게 끌고 간다. /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돌아온 명작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중 돈키호테 (왼쪽·황정민)와 산초(오른쪽·이훈진)의 궁합은 극을 탄탄하게 끌고 간다. /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돈키호테의 맹목적 사랑을 받는 알돈자(이혜경·조정은)는 꿈을 만나 구원받는다. 시인 김춘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듯, 알돈자는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로 불러 주었을 때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 되었다. "나를 짓밟고 간 놈들보다 꿈꾸게 한 당신이 더 잔인해"라는 그녀의 말은 꿈을 버리고 일상에 투항한 관객의 가슴을 때린다. 그러나 "꿈꾸게 좀 하지 마!"라던 그녀도 결국 꿈을 끌어안는다.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게 미친 짓"(돈키호테의 대사)이므로.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게 미친 짓"

엘비스 프레슬리와 플라시도 도밍고도 부른 주제곡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은 내내 귓가에 남는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5개의 거울 앞에 선 돈키호테가 "너의 레이디는 창녀이며 모든 것은 미친 악몽"이라는 무참한 현실과 맞닥뜨리는 장면은 연극적인 파장과 완성도 높은 연출이 돋보인다.

돈키호테를 정신나간 노인이 아니라 꿈의 기사로 응원하게 되는 힘은 미친 행각에 담긴 그의 진심에 있다. 알돈자가 준 더러운 천 쪼가리를 얼굴에 비비며 '비단이야!'라고 외치는 돈키호테의 탄성에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뿜어내는 진심의 광채가 빛난다. 극의 절정 부분, 죽음의 문 앞에 섰던 그가 힘껏 팔을 뻗으며 일어날 때, 당신도 벌떡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고 싶어질 것이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3만원, 13세 이상 관람가,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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