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동 주민들, 홍대 앞서 밀려온 예술가들 품다

입력 : 2012.06.20 03:11   |   수정 : 2012.06.20 04:08

[제2의 음악거리 '예찬길']
홍대 앞 힙합클럽 번성하자 음악연습장 등 대거 옮겨와
"시끄럽다고 할 줄 알았는데 우리동네 명소된다며 환대" 무료공연·음악강좌로 報恩

인디 밴드의 메카였다가 춤과 유흥의 중심지로 변한 서울 홍대 앞에 주민들과 젊은 뮤지션이 합심해 만든 제2의 '음악 거리'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홍대입구에서 500여m 떨어진 마포구 서강동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 통기타와 드럼이 가득한 점포에서 간이 공연이 시작됐다. 전자기타를 든 뮤지션 오승유(22)씨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엄마 등 동네 주민 20여명을 앞에 두고 비틀스 노래 '예스터데이(Yesterday)'를 부르기 시작했다. 130㎡(약 40평) 넓이 악기사에 잔잔한 음률이 퍼지자 관중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때 40여곳에 달하던 홍대 앞 인디 밴드 공연장은 3~4년 전부터 점차 힙합 클럽으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이제는 20여곳으로 줄었다. 그나마 있는 공연장도 공연 횟수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시끄러워진 홍대 앞을 떠난 음악인 일부가 홍대 산울림 소극장에서 서강대 방면으로 뻗은 언덕배기 2차선 도로 인근 서강로 11길에 새 터전을 닦으면서 부흥(復興)을 꿈꾸고 있다. 음악 관련 점포 10곳이 둥지를 틀었고, 미술·공예 작업실 8곳이 가세했다. 이 길은 '예찬길'이란 애칭을 갖게 됐다. 예술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동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 안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 일대 음악인들이 마련한 무료 공연이 열리고 있다. 음악을 즐기고 싶은 주민이면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다. /마포구 제공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동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 안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 일대 음악인들이 마련한 무료 공연이 열리고 있다. 음악을 즐기고 싶은 주민이면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다. /마포구 제공

예찬길 자리는 사실 주택가였다. 주민들이 항의할까 봐 조율할 때도 숨죽이며 조심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처음엔 주민들도 '주택가에 웬 악기사'라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회의에서 "젊은 음악가들이 우리 동네를 서울의 대중 예술 명소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데 주민들이 의견일치를 보면서 기류가 바뀌었다고 한다. 뜻밖의 환대(歡待)를 받은 음악인들은 보은(報恩) 차원에서 지난달부터 기타와 드럼 연주를 배우길 원하는 주민들을 모아 일주일에 두 차례씩 강의하고 한 달 수강료 1만원만 받는 음악 강좌를 열었다. 20명 정원에 5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악기사 내에 간이 무대를 놓고 하는 공연도 비슷한 취지다. 가족끼리 차분하게 들을 만한 공연을 기획하자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예찬길 음악가들이 지난달부터 돌아가며 매주 금요일 공연을 벌여 한 달째 이어오고 있다. 비틀스, 존 레넌, 오아시스 등의 친숙한 팝송을 들을 수 있다. 기타 연주자 정선인(25)씨는 "연주자들은 동네 주민들과 소음 문제로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예찬길 주민들은 우리를 음악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음식값도 깎아준다"고 했다. 공연을 찾은 주부 조수연(42)씨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마음 편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 아주 좋다"고 말했다.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 사장 김광민(27)씨는 2011년까지 홍대 앞에서 클럽 'AOR(All of rock)'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예찬길로 옮겨왔다. 한때 '부산 록 페스티벌' 등에서 관객 1만명을 앞에 두고 연주했던 베테랑. 그는 "수많은 관객의 환호성도 들어 봤습니다. 하지만 동네 아주머니가 공연을 듣고 나가며 '고맙다'고 하는 소리가 환호보다 더 좋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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