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세' 하늘의 별을 따다

입력 : 2012.06.17 23:58

발레리나 박세은, 세계 3大 파리오페라발레단 정단원에
학교때부터 집념·투지 강해… 외국, 특히 동양인엔 바늘구멍
最古 발레단서 한국인 첫 발탁

'빡세'의 집념이 콧대 높은 파리까지 삼켰다.

발레리나 박세은(23)이 한국 발레리나 최초로 세계 최정상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정단원에 발탁됐다. 박세은은 16일 본지 통화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각) 오디션을 치렀으며, 응시자 130명 중 1등으로 유일하게 정단원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1669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설립한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으로, 아메리칸발레시어터·영국왕립발레단과 더불어 세계 3대 발레단으로 불린다. 박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BOP 준단원으로 활동해 왔다.

박세은의 정단원 입단은 발레를 자국 문화의 자존심으로 여기는 BOP의 높은 벽을 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BOP는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게 배타적이기로 악명이 높다. 단원 180명 중 외국인 비율을 5% 이하로 뽑도록 규정이 정해져 있으며, 외국인 중에서도 거의 유럽인을 뽑는다. 발레리노로는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2000년 입단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발레단의 꽃인 발레리나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 정단원 입단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김 교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수준과 시스템을 안다면 감히 도전해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벽이 높고 폐쇄적인 곳"이라며 "박세은씨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뤘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꿈만 같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정단원 입단이 확정된 발레리나 박세은이 2009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최연소 주역을 맡아 우아한 흑조의 자태를 보여주던 모습. 작은 사진은 무용전문지 ‘당스(Danse)’ 3월호 표지에 실린 박세은.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정단원 입단이 확정된 발레리나 박세은이 2009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최연소 주역을 맡아 우아한 흑조의 자태를 보여주던 모습. 작은 사진은 무용전문지 ‘당스(Danse)’ 3월호 표지에 실린 박세은.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박세은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녔다. 예원학교 시절 별명이 '빡세'였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집념과 투지가 강했다. 10세 때 발레를 시작해 예고 1학년 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적 콩쿠르를 휩쓸며 '콩쿠르의 여왕'으로 불렸다. 세계 4대 무용 콩쿠르 중 모스크바를 제외한, 잭슨(2006)·로잔(2007)·바르나(2010) 등 3개 대회를 석권한 한국 최초의 발레리나다. '발레 콩쿠르 3관왕'은 현재까지도 박세은이 유일하다. 2007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스튜디오 컴퍼니에서 활동하다 2009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최연소 주역으로 활약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정단원으로 입단하기로 했다가 파리로 건너가 1년 만에 역사를 만들었다.

박세은의 정단원 발탁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BOP 단원은 대부분 발레단 부설 발레스쿨(6년 과정)을 거쳐서 선발된다. 입단한 후에도 준단원 과정을 4~5년 정도 거친다. 박세은처럼 부설 학교도 거치지 않고 준단원 1년 만에 발탁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박세은은 "외국인의 오디션 통과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단원이 '뭔가 특별한 것(something special)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해줬다"며 "표준적인 미(美)를 따라가려 하기보다 남들이 못하는 나만의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단원 합격은 뜻밖의 부상을 정신력으로 극복한 결과이기도 하다. 박세은은 지난 3월 연습 중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 두 달간 치료를 받으며 발레를 쉬어야 했다. 발레 시작 13년 만에 처음 당한 부상이었다. 게다가 최근 거주하던 아파트 아래층에서 화재가 나는 불운까지 겹쳤다. 박씨는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마인드 컨트롤도 실력"이라는 각오로 덤볐다. 박세은은 로잔 콩쿠르 우승 때도 독감과 편두통, 골반 통증에 시달려 주최 측에서 출전을 말렸으나 "끝까지 해보겠다"고 강행해 결국 우승을 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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