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첫 악장부터 소용돌이였다

입력 : 2012.06.13 23:32

파보 예르비의 프랑크푸르트방송 교향악단

현재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가운데 하나가 에스토니아 출신의 파보 예르비(50·사진 가운데)다. 독일 도이체 캄머 필하모닉과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에 이어 지난 시즌 프랑스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하면서 유럽 명문 악단 세 곳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고국 에스토니아 국립 교향악단의 예술고문과 전(前) 직장인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의 명예 음악감독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그가 '초고속 승진'의 비결을 국내에서 공개했다. 10일 성남아트센터와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 무대였다.

이틀째인 11일 후반부 메인 메뉴인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직조하는 명장의 솜씨가 그대로 드러났다. 첫 악장부터 탄탄하면서도 깨끗하게 정련된 금관을 바탕으로 빠르기와 강약을 다소 변칙적일 만큼 격렬하게 변화시키며, 들끓는 에너지를 무대에 투사했다. 한 소절도 허투루 넘기는 법 없이 단락마다 치밀하게 정성들인 세공은 1악장부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예르비는 파리 오케스트라에서는 프랑스 작품들을 연구하고, 도이체 캄머 필하모닉과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며,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과는 말러와 브루크너를 본격적으로 실험하는 등 영민하게 레퍼토리를 안배할 줄 아는 지휘자다. 이날도 안전운행보다는 곡예 운전에 가까울 만큼 감정의 제한 속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변화무쌍하게 곡에 다가갔다. 지휘자의 대담한 코너 워크가 가능했던 건, 물론 악단의 금관이라는 차체 자체가 탄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앙코르곡인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에서조차 자체 분해와 재조립을 거쳐 새로운 소리를 빚어내는 정교한 세트 플레이에 곡 중간인데도 객석에서는 흥겨운 박자를 따라서 박수가 흘러나왔다. 예르비의 굳은 표정은 때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연상시키지만, 청중의 감정을 재빠르게 낚아채는 솜씨만큼은 스승이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을 닮아 있었다.

이틀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미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32)은 낭만주의적 정서에 과도하게 탐닉하는 법 없이, 야무지고 빈틈없이 작품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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