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역 싫다, 난 '쎈'마녀 할래"

입력 : 2012.06.08 00:42

몬테카를로 발레단 이적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

국립발레단 제공

"공주는 싫어요. 가식적이잖아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악역이 훨씬 재밌죠."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나 윤혜진(32·수석무용수·사진)은 "따분한 공주보다 화끈한 마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는 9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으로 이적한다.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이끄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모던 발레가 강점인 세계 정상급 발레단이다. 윤혜진의 모나코 진출은 늘어가는 한국 무용수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요의 안무는 연기와 표현을 중시한다. 때리는 동작이 나올 때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후려친다. 윤혜진은 2008년 마이요의 안무작인 '신데렐라'에서 계모 역을 맡고부터 팬을 거느리기 시작했다. 욕만 먹기 좋은 계모 역에 개성을 불어넣은 윤혜진의 춤에 팬들이 열광했다. "그 이후로는 '쎈' 역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도 강렬한 역을 하는 게 심심한 주인공 할 때보다 좋아요."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지낸 왕년의 스타 배우 윤일봉(78)씨의 딸인 그는 한때 "아버지가 힘써서 들어왔다"는 뒷말에 시달리기도 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 오디션은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작년 말 '지젤' 지방 공연 때 부상을 당해 석 달을 쉬었다. "나이는 많지, 부상은 입었지, 몸은 무겁지, 그만둬야 하나 회의가 자꾸 들었어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3월 초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공연 중인 일본으로 찾아갔다. 오디션 기회가 이틀간 주어졌다. 첫날, 심사위원들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보냈다. '떨어졌구나, 아, 창피하다'는 생각에 포기하려다가 "하루만 더 해보자" 싶어 다시 찾아갔다. 오디션 종료 5분 전 윤혜진을 부른 마이요는 "답변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 후 2주가 2년 같았어요. 3월 28일에 '계약하자'는 이메일을 받고 환호성을 질렀죠." 윤혜진에게 닥친 과제는 살을 찌우는 것이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는 마른 체형을 싫어해요. 섹시하지 않다고요. 꼭 살을 찌워서 최고로 섹시한 발레를 보여 드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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